세계 가구박람회가 개막한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박람회장은 흰색 천의 물결로 넘쳐났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밀라노 가구 박람회는 가구ㆍ인테리어 시장 최대 행사이자 단일 박람회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세계적 디자이너 카를로 콜롬보가 디자인한 '스마트 소파'는 올해 가구업계의 주된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흰 색상에 천과 같은 자연적 소재를 사용하면서 인위적인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다. 플로우(Flou)가 선보인 스베바(Sveva), 오드아르도 피오라반티(Odoardo Fioravanti)도 마찬가지다. 나무와 천을 소재로 디자인의 화려함을 최대한 자제했다.
이탈리아 소파 전문 업체 알플렉스 관계자는 "올해는 천과 나무 소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며 "색상에 있어서도 흰색에 더해 2011년 패션업계의 유행 컬러인 보라색(바이올렛)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년간 해마다 거르지 않고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찾았다는 안성호 에이스침대 사장도 "그 동안 없었던 일인데 백색이 돌아왔다"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오던 친환경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진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날 박람회장에는 자연 그대로 소재의 특징을 살리는 디자인이 강세를 띄는 가운데 광택이 나는 색상이나 유리 등의 다른 소재로 포인트를 주려는 노력이 담긴 가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가구 회사 도이모 데코(Doimo Décor)도 '모래의 색, 지구를 위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계절의 변화를 디자인에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 특히 올이 굵은 직물과 코르크 등을 소재로 해 눈길을 끌었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한 디자인 전문가는 조심스럽게 "미니멀리즘(장식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가구산업은 자동차, 패션에 이은 이탈리아 3대 산업이다. 하지만 가구박람회가 처음 시작된 1961년 당시만해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경기불황 탓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가구업체의 대부분의 2~3명이 가업으로 이어오던 수준. 가구박람회는 이들이 수출을 통해 활로를 찾기 위한 마련한 행사였다.
50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33만명이 가구박람회를 찾았다. 직ㆍ간접적 경제적 파급효과는 4억5,000만 유로로 추정된다.
가구 산업의 약점으로 여겨졌던 작은 규모도 이제는 최대 장점이 됐다.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의 명성은 각 공방의 장인들이 저마다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가구를 생산하는 것에서 오기 때문이다.
카를로 구엘미 가구박람회조직위원회 회장은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는 하나의 트렌드가 있는 게 아니다"며 "2,000여개의 업체들이 매년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가구 박람회를 계기로 독일 라이프치히와 함께 1차 세계 대전 이후 박람회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밀라노도 이제 박람회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도시가 됐다. 가구박람회를 필두로 건축, 패션위크, 광학, 가죽 등 다양한 박람회가 연중 끊이지 않고 개최된다.
가구박람회가 개최되는 지금도 밀라노 시내 곳곳은 공사가 한창이다. 2015년 세계박람회(EXPO) 개최를 위해 전시장과 지하철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다. 천년 고도 밀라노는 이를 위해 최근 도심 건축물에 대한 고도제한을 풀었다.
고딕풍의 낮은 건물들 사이로 10층 이상의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는 변화를 겪고 있는 밀라노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밀라노 세계 가구박람회는 밀라노 지역 최대 종합 전시관(21만500㎡ 규모) 피에라 밀라노에서 17일까지 열리며 세계에서 2,720개 업체가 참가했다.
밀라노=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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