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 안에 있는 인문학박물관은 한국인의 저작을 중심으로 근ㆍ현대 한국인문학에 관련된 유물 2만 4,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단행본과 연속간행물이 대부분이고 시청각 자료도 있다. 고고학 유물과 미술품 중심인 여느 박물관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학교법인 중앙학원이 2008년 설립했다.
작지만 독특한 이 박물관은 그동안 전시 외에 인문학 강좌, 연구와 출판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자취와 성과를 정리해왔다. 최근 펴낸 책 <인문학의 싹> (인물과사상사 발행)은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 부터 2001년 나온 이종하 저 <우리 민중의 노동사> 까지 고전으로 꼽을 만한 명저 12권을 소개함으로써 한국 인문학의 깊이와 폭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해 이 박물관의 대중강연에서 강의했던 미학자 진중권, 철학자 김재현 등 인문학자 12명이 지리, 문명, 노동, 문학, 철학, 통계, 신화, 교육 등 우리 인문학의 거의 전 분야를 대표하는 고전들을 엄선해 글을 썼다. 우리> 택리지> 인문학의>
9일 시작한 특별전 '우리 학문의 길'도 그 연장선에 있다. 8월 말까지 하는 이 전시는 개항기부터 1960년대까지 나온 한국인 저자의 인문학 책 300여 종을 모았다. 한국인이 쓴 첫번째 경제학 책인 박승희 주정희 공저 <최신경제학> (1908), 가정교육학 분야의 국내 첫 저작인 남궁억 지음 <가정교육> (1918) 등 귀중한 책들이 포함돼 있다. 가정교육> 최신경제학>
전시는 우리 학문이 해온 역사적 사회적 역할을 학문의 과제, 소산, 목표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돌아본다. 학문의 과제 편은 학문이 우리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다뤘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화기에 전근대적 사회악으로 비난 받은 인간 군상, 너도나도 노다지를 찾아 금광 개발에 나섰던 일제강점기의 골드러시 등을 책으로 만난다. 학문의 소산으로는 역사, 철학, 정치, 사회, 경제, 법, 교육, 심리, 문화 연구의 7개 분야에서 나온 주요 저작을 소개한다. 끝으로 학문의 목표 편에서는 근대화와 민주화에 대한 학문적 대응을 살펴본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 학문의 한계를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학문이 현실과 동떨어져 일상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고, 획일적으로 구분된 분과학문의 높은 벽에 갇혀 인간과 삶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흔적을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인문학 위기론을 구성하는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성찰과 반성이 기본인 인문학 정신에 걸맞게, 전시의 각 코너는 관람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설명문 패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근대는 어떻게 우리 삶에 들어왔는가?' '중산층의 생활이 아름답고 진보적이며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심각한 질문들이다. 답을 찾으려면 전시물과 설명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생각해야 한다.
인문학박물관은 이번 전시가 인문학의 위기를 확인하고 학문의 생활화를 위한 논의를 싹 틔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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