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범죄의 배상액을 대폭 줄인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조항의 위헌 여부도 판단해 달라고 청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의견 대립을 보여왔던 재판소원제 도입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1980년대 공안조작 사건인 ‘아람회 사건’의 피해자 37명은 12일 “국가배상과 관련해 지연손해금 산정 기준을 기존 판례와 달리 ‘불법행위 발생일’에서 ‘사실심의 변론 종결일’로 바꾼 대법원 판결은 위헌”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불법행위 이후 장시간이 흘러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는데도 불법행위 발생일부터 지연손해금을 산정하면 과잉배상이 될 수 있다”며 이 사건에 대한 원심 판결의 배상액 206억원을 90억원으로 줄였다.
1980년대초 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진압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등으로 기소됐던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은 당시 수사기관의 고문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며 2000년 재심을 청구, 2009년 서울고법에서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이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160억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내 1ㆍ2심에서 승소, 총 206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은 배상액을 116억원 줄인 것이다.
청구인들은 “이 판결은 지연손해금 기산점에 대한 기존 법리의 변경이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맡아야 하는데도 재판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판결해 재판청구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또 과잉배상 논리에 대해서도 “국가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위헌적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헌법소원은 재판소원제 도입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청구인들은 대법원의 국가배상 판결에 대한 판단에 앞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청구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의 위헌성을 먼저 가려달라고 했다. 따라서 재판소원제 도입에 적극적인 헌재가 만약 위헌 판단을 내릴 경우, 앞으로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에 대해 “사실상 4심제를 하자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최고 법원’의 지위를 둘러싼 두 기관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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