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보았다. 첫 번째는 작은 망원경을 갖고 가수들의 표정까지 샅샅이 뜯어보면서, 두 번째는 보다 뒷좌석에서 자막과 무대 위의 상황을 일일이 맞춰 가면서. 국립오페라단의 ‘시몬 보카네그라’(7~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가 공연장에 던지는 의미를 원근법적으로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애증 등 인간의 내면을 주제로 한 밀실의 오페라는 너무 낯익다. 그러나 이 무대는 역사와 정치를 노래하는 광장의 오페라다. 마치 ‘맥베스’의 도입부를 연상케 하듯 검은 아우라 속에서 이뤄지는 출발 대목부터 달랐다. 압제를 끝낼 영웅으로 평민 출신인 보카네그라를 옹립하자는 모의 장면이다. 이는 장차 이 오페라가 거대 담론의 무대, 그것도 누아르한 무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기에 족했다.
무대는 도식적이라 해도 좋으리만치 선명한 양분법의 구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필연이었다. 특히 무기를 들고 대립하는 두 정치 세력 간의 충돌 대목에서 일사불란한 군중 장면(mob scene)의 생동감은 도식적이라고 느낄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는 어느 순간 사람들이 편을 갈라 싸울 수밖에 없게 한다는 사실을 무대는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감각적으로 설득해 냈다는 데 이 오페라의 의미가 있다면 지나칠까. 예술이란 양식으로 혁명과 사랑을 동시에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뮤지컬 ‘레 미제라블’ 처럼.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주재하는 사람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밀한 음악으로 무대 위의 상황을 통제하는 지휘자 정명훈씨다. 그가 만들어 낸 서울시향의 섬세한 현은 관능적이기까지 했고, 관은 운명의 실체를 보여 주는 듯 압도적이었다. 공연 내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뒷모습만 보였지만 그의 역동적 모션은 이 오페라가 1986년 뉴욕 메트 데뷔작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줬다. 그는 분명 33세의 자신과 접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제작팀이 창조해 낸 미니멀한 무대 디자인은 오페라의 주인은 음악이 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상기시켰다. 추상적이고도 조직적인 무대 메커니즘은 자칫 부박해 지기 쉬운 대형 무대의 맹점을 견제하는 듯 했다.
이 오페라는 정치와 예술의 접점에서 보아야 한다. 소프트와 페미니즘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군림해 무수한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은 여전히 거대 담론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줬다. 이 땅의 오페라 생산 주체들은 이 점을 어떻게 해석할까.
무대에 흐르는 장중함에 객석은 화답했다. 여타 오페라라면 아리아 열창 뒤 박수와 환호가 관습적으로 따랐겠지만 이 오페라의 관객들은 안 그랬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뚫고 솟아오르는 소프라노 강경해씨의 아리아는 아찔하리만치 매혹적이었다는 말을 그럼에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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