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1차분이 14일 돌아왔다. 나머지도 5월 말까지 들어온다. 환수 운동을 한 필자는 기쁘기보다는 침울하다. 한국과 프랑스 정부 간 합의문을 보면 합의가 아니라 제2의 병인양요라고 말하고 싶다.
합의문 1조는'5년 단위의 대여'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그런데 외교통상부는 암묵적 영구 대여나 반환이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이렇게 해석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오류에서 보듯이 외교통상부의 번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합의문의 불어본을 공개해 번역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며, 아직 공개를 못 하고 있는 한국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약정서도 불어본과 번역본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또한 합의문 3조를 보면 5년 갱신 시점이 되는 2015, 2016년 한국의 국보 문화재와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에서 전시하게 돼 있다. 외규장각 도서와 다른 문화재가 볼모가 될 수도 있다.
합의문 4조를 보면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한국에 대한 외규장각 도서 대여는 그 어떤 다른 상황에서도 원용될 수 없으며, 선례를 구성하지 아니한다. 이는 문화재 반환 요청과 관련, 당사자들을 대립되게 했던 분쟁에 최종적 답이 된다'고 돼 있다. 프랑스는 대여 외 다른 방식으로는, 또한 외규장각 도서 이외 다른 문화재는 반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분쟁의 최종적 답'이라는 것은 문화연대가 2007년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파리행정법원에 제기한 반환 청구 소송 등 반환 운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합의문 5조를 해석해 보면 대여받는 외규장각 도서의 국보 문화재 지정은 절대 불가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제 3 기관에서 전시하는 것이나 귀환 환영 행사도 프랑스가 합의해 줘야 가능하다. 또 합의문 6조에 따라, 수송 등 합의 이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한국 부담이다.
14일 외규장각 도서 1차분 귀환에는 한국 측 보안 담당자가 동승하지 못했다. 국보급 문화재가 돌아오는데 운송 중 안전을 살필 한국 쪽 인력 한 명 없이 프랑스가 주는 대로만 받아온 것이다. 이는 정식 반환이 아니라 대여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 정부는 시민들의 환수 운동에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환수 운동과 소송을 통해서 한국 정부가 포기한 문화재 소유권을 찾아오는 데 더욱 힘쓸 것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외규장각 약탈문화재 환수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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