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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학생들이 보낸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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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학생들이 보낸 메시지

입력
2011.04.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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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마음으로 자살의 유형에 대해 생각한다.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문제가 있을 때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살을 '도피적 자살'이라 부를 수 있겠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어서 행해진 일일 것이니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이들은 감히 비난할 수가 없다. 한편 세상에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한 자살을 '선언적 자살'이라 할 만하다. 예컨대 우익 궐기를 외치며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죽음이나 노동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의 죽음은, 비록 발신한 메시지의 종류는 판이하지만, 이 유형에 속할 것이다.

그 밖에도, 삶이 구질구질하니 멋있게 죽겠다는 식의 '미학적 자살'도 있을 것이고, 어떤 진실에 책임을 지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윤리적 자살'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빈번한 것은 맨 앞의 두 유형일 텐데, 문제는 어떤 자살의 의미가 '도피'와 '선언' 중 어느 쪽인가를 따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고 장자연 씨의 경우가 알려주듯이, 어떤 죽음을 온당하게 애도하기 위해서는, 그 죽음의 의미를 도피로 정리하려는 이들에 맞서서 그 죽음이 발신한 메시지를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 소식을 접하고서야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 왔는지 알게 되었다.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그래야 마땅하다고 믿는 교수들이 다른 학교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일부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폐기 중인 시스템이라 알고 있다. 그들이 자연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은 것도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닐 것이다. 카이스트에서는 심지어 일본어 과목조차 영어로 진행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그 발상이 그로테스크해 보인다.

그런데 성적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부과하는 제도는 영어 강의 발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테니 아르바이트는 꿈도 못 꿀 학생들에게 등록금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그렇다면 이 끔찍하게 창의적인 제도는 학생이 부모에게 느끼는 죄의식을 활용하는 협박이자 고문일 수밖에 없다. '협박' '고문' 운운이 과장된 비유가 아님은 일련의 죽음이 증명하는 터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이 제도가 그간 몇몇 언론의 칭송을 받았다는 사실은 말문이 막히게 한다.

카이스트는 고립된 섬이 아니다. 이런 일들이 지난 몇 년간 한국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곳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왔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이를 격려했다는 뜻일 게다. 타인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건 상징화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감히 말하거니와, 학생들의 자살은 이 사회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선언적 자살에 가까울 것이다. 이 죽음들을 나약한 이들의 도피적 자살이라고 우기고 싶은 분들이 대학 당국자 일부를 제외하고도 꽤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어떤 일이 필요하고 또 가능할까. 기껏해야 나는 허먼 멜빌의 소설 (창비, 2010)의 주인공을 떠올리고 그 작품이나 다시 뒤적이던 참이었다. 시스템의 명령 앞에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기묘한 뉘앙스의 대답으로 일관하다 죽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 바틀비 말이다. 그러다 반갑고 고마운 소식을 들었다. 뉴스는, 카이스트 개교 이래 최초로 학생총회가 소집되었다는 소식을, 또 수리과학과 한상근 교수가 영어 강의 거부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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