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동안 우리말글 독립운동에 몸바친 사람으로서, 세종대왕이 나신 곳에 영어도서관이 들어선다는 사실은 충격입니다. 결코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대표)
서울 종로구가 세종대왕 생가 터가 있는 통인동에 '세종마을 어린이 영어도서관'을 만든다(본보 13일 13면)는 소식에 한글 운동가들은 참담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64) 대표는 14일 "세종대왕 생가 부근에 마땅한 땅 한 평이 없어 복원사업이나 기념관 건립을 못 하던 터에 영어도서관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60년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면서 우리말 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세종대왕 표지석 앞에서 세종대왕 생가 복원 등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90년대 후반 영어 공용화론이 대두되던 때가 떠오른다"며 "한글은 과거에는 한자에, 지금은 영어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했다. "카이스트를 포함한 많은 학교들이 영어로 교육을 하고, 회사와 국가기관 부서 이름까지 영어로 바꾸는 불행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영어도서관 설립에 대해 "서울시가 최근 세종대로 일대에서 펼치는 '한글 마루지(랜드마크의 우리말) 조성사업'에 반하는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영어도서관에 쓰일 공간을 세종대왕 업적과 정신을 알리는 집으로 꾸며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대표뿐만 아니다. 한글관련 단체 관계자들은 13일 저녁 이 문제에 대한 긴급 회의를 갖고 의견을 모아 14일 '세종대왕 나신 곳에 영어도서관을 만들겠다니!'라는 성명서를 냈다. 참여한 단체는 한글학회 한말글문화협회 한글문화원 한글문화연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등 20곳이 넘는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 말글문화의 성지에 외국말 기념탑을 만드는 것과 다름 없다. 세종대왕을 능멸하는 일"이라며 영어도서관 건립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또 "종로구가 영어 열풍에 아무 생각 없이 맞장구 치는 꼴"이라며 "모든 나라가 국민이 가장 우러러보는 지도자가 태어난 곳을 국민 교육장으로 만들어 자랑하고 관광지로 만드는데, 우리는 세종대왕 나신 곳을 조그만 표지석만 길가에 세워놓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들 단체들은 앞으로 서울시 및 종로구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라 항의 방문이나 규탄 집회 등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서울시는 사전에 영어도서관 사업 내용을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종로구청에 "'한글 마루지 조성사업'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협조문을 보낸 상태다. 종로구 관계자는 "이제와 도서관 사업을 접기는 쉽지 않지만 서울시 부지이니만큼 시의 입장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마을 어린이 영어도서관은 세종대왕이 태어났다고 알려진 통인동 127번지에서 100m남짓 떨어진 통인동 89-14호에 5월 어린이날 즈음 문을 열 계획이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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