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재미없어. 건물 찍어서 합성한 거 아니야?"
언뜻 보면 화려한 사진 기술로 장난친 것 같다. 헌데 찬찬히 뜯어보면 숨은그림찾기 같은 흥미를 유발한다. 보기 흉한 공사 현장을 둘러친 천이나 벽(방진막)을 찍고, 낡은 건물 외벽에 예술가가 그려 놓은 건물 그림을 카메라 렌즈에 포착했다. 이들은 실제 건물과 어울리며 착시를 일으킨다.
유럽에서는 공사 현장에 명화(名畵)나 완공 후 건물의 이미지로 가림막을 설치한다. 대중은 가짜인 줄 알면서도 호기심에 한 번 더 공간을 돌아본다. 이는 흡사 보는 사람들이 실제 건물이나 사물로 착각하게 할 목적으로 그리는 눈속임 회화(Trompe l'oeil)의 일종이다.
이 효과에 푹 빠진 사진작가 한성필(39)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두 개의 현실(Dual Realities)'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그는 "2004년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대성당의 방진막 앞을 지나는데 실제 완공됐을 때 모습이 그려져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더군요. 가상의 공간이 실제 모습을 대체하는 것이 재미있었지요. 우습지만 보기 흉한 주황색, 푸른색 천으로 가리는 것보다 훨씬 낫죠. 공공미술로서 대중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거죠"라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실재와 가상, 현실과 이상에 관한 화두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 작품은 사진 11점등 총 16점. 방진막을 찍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가령 2009년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 앞에 설치된 한 건물을 찍은 'Operation'은 광고판을 부착하기 위해 방진막의 일부를 잘라낸 것을 찍은 것이다. 잘라진 공간으로 내부 공사 공간이 훤히 들어난다. 방진막과 실제 건물, 외관과 내부가 뒤엉켰다. 또 다른 작품 'Reflected Reflections'이나 'Mirage'는 유리에 반사된 건물 그림을 그린 것을 다시 찍은 것. 사진은 대부분 프랑스 남부 등 유럽에서 찍은 것이다.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전구를 밝혀 눈부신 하얀 공간에 4m 안팎의 카를 마르크스(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95) 동상을 설치했다. 이것은 1986년 독일 베를린의 한 공원에 동독정부가 사회정치적 사상의 토대를 만들었던 이들을 기념해 설치했던 것을 본 뜬 것이다. 작가는 "2010년 9월 이 동상들은 지하철 설치공사를 위해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몰락을 예언했던 서방을 바라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중권 문화평론가는 "작가가 해 왔던 사진 작업이 3차원의 입체를 2차원의 평면으로 재현한다면 청동 느낌이 나도록 채색해 청동 조각처럼 보이게 한 동상 작업은 2차원의 사진으로 3차원의 입체로 되돌린 것"이라며 "이는 가상과 실재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 한 차원 더 깊어진 것"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내달 8일까지.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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