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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돌려서 말하는 일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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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돌려서 말하는 일본 정부

입력
2011.04.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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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에는 돌려서 말하는 특이한 어법이 많다. 상대방에게 일을 시킬 때 직설적으로 '하라'는 표현보다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거나, '하는 편이 좋다'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안 된다'는 표현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하겠습니다'보다 '내가 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예의 바른 표현으로 인정한다.

먹어도 괜찮지만 먹지 말라고?

심지어 '숙제를 안 해서 벌을 받았다'라기보다는 '숙제를 안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벌 받는 일을 당했다'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일본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이런 표현은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런 표현의 바닥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수만 명이 숨지고 15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도호쿠(東北) 대지진 사고 수습을 진행 중인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돌려서 말하는 화법을 구사, 구설수에 올랐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와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 등은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주변 30㎞ 이내 거주 주민들에게 대피를 권고하면서 자발적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서를 달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최근 이바라키(茨城) 현에서 채취한 야채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자, "먹어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겠지만 그래도 먹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 출하 중단을 결정했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소비자들은 먹는 음식을 두고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항의했고, 해당 지역 농민들도 "보다 명확한 지침을 내려줘야 농사를 계속 지을지 말 건지 결정할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東京) 주민이 마시는 수돗물과 상수원 등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을 때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당분간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주민의 안전과 건강이 걸린 상황에서조차 정부가 이런 표현을 남발하자, 그래도 믿어야 할 것은 정부라고 생각하던 국민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후쿠시마 외곽 옥내피난 구역에 위치한 이타테무라(飯館村) 주민자치회는 최근 임산부와 3세 이하 아동들의 피난 결정을 내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지역 토양의 방사성 물질 오염농도가 IAEA가 정한 기준치의 2배를 넘고 있다며 일본 정부에 즉각 피난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피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러는 동안 이 지역 초ㆍ중학교 대기 중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학교 운동장의 모래 등이 고농도 방사선에 오염되자 주민들은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며 자체적으로 피난을 결정했다.

국민신뢰 회복이 더 큰 과제로

국민들의 불신은 정부의 발표조차 믿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된 도쿄 인근 지바(千葉)현 앞바다에서 잡힌 어패류조차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일본 전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에 불통이 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수돗물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사라졌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각 지역에서는 생수 사재기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민적인 위기상황에서는 보다 명쾌한 화법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듯하다. 하지만 한 번 잃은 신뢰를 다시 얻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법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태 해결뿐 아니라 국민들의 신뢰도 회복해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안게 됐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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