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신용등급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서민금융 대출 시 담보를 요구하기 어려우므로 신용대출이 주로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신용 등급을 적용하여 대출 심사를 하고 있다. 신용등급은 어떤 사람이 돈을 빌려갈 경우 그 돈을 갚을 확률이 얼마인지를 측정하여 등급으로 나타낸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돈이 얼마나 확실히 갚아질지가 중요한데 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정확한 정보 뒷받침을 전제로
만일 돈이 갚아질 확률이 낮다면 당연히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할 것이고 혹은 빌려주더라도 금리를 높여 그 위험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들 것이다. 따라서 대출자들에게 돈이 갚아질 확률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용등급 제도는 매우 유용한 서비스이다.
그런데 신용등급은 돈을 빌려가는 사람의 관점에서도 도움이 된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대출자가 믿지 못하여 돈을 안 빌려준다면 매우 섭섭할 것이다. 신용등급은 이런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자신의 위험도에 맞는 금리를 물고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물론 돈을 갚을 능력이 없거나 갚을 의사가 없는 사람들은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것은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이 사람들이 낮은 신용등급으로 인해 돈을 못 빌리게 되는 것은 경제 전체로 보아서도 큰 문제가 없다.
나아가 신용등급 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잘 갚을 유인을 제공하여 금융거래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고 금리도 더욱 낮아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가 빌린 돈을 지금 잘 갚지 않는다면 내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다음에 돈을 빌리려 할 때 어려워질 것이므로 나는 매번 금융거래를 할 때마다 보다 성실히 약속을 지키게 되고 이러한 성실한 노력은 높은 신용등급의 유지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이고 저렴한 금융거래라는 혜택을 내게 가져다 준다.
이런 신용등급 제도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제도가 보다 정확한 정보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용등급 추정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를 지나치게 제한하면 설명력이 높은 변수들을 추정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신용등급의 예측력을 떨어지게 만든다. 이는 결국 대출자들이 신용등급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므로 금융시장이 정확한 정보를 이용한 최적의 자원 배분을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서민들이 현재 신용등급이 낮아 받게 되는 차별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신용등급 제도를 하나의 사다리 체계로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 번에 모든 사람들의 신용등급을 올리거나 등급의 사용을 억제하여 이 문제를 해소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접근을 하는 경우 신용등급 제도의 정보능력이 떨어져 대출자들이 이 제도를 사용하지 않게 되고 결국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뿐 아니라 좋던 사람들까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어 금융시장의 퇴보를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보의 사용을 억제하는 것보다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용등급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성실히 돈 갚은 경험 잘 반영을
사회 초년생이거나 최근에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신용등급이 낮아진 사람들의 경우 대출 시 정부의 정책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일단 이런 정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돈을 성실히 갚지 않는다면 정부로서도 끝없이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만일 이들이 돈을 열심히 갚는 한면 이들도 스스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신용등급 제도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정부의 도움으로 빌린 돈을 잘 갚을 경우 신용등급이 올라간다면 이들은 성실히 돈을 갚으려 할 것이고 다음 번에는 정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되어 모두가 잘 되는 결과가 얻어진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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