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잠깐이나마 우리 아이가 혹시 진짜 영재 아닐까 생각했다. 주변 다른 아이들이 '단어'로 의사표현을 시작하던 시기에 우리 아이는 이미 '문장'을 말했다. 한 자리 숫자는 정확히 말하고 알파벳도 곧잘 읽었다. 하지만 38개월 된 지금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하다. 말이 몇 개월 빨리 늘고 숫자를 몇 개월 빨리 아는 게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이젠 확실히 알게 됐다.
본보 4월 2일자 H-Story에 실린 '책 밖에 모르는 아이? 영재 아닌 병을 키우는 겁니다!' 기사에 대해 엄마들의 반응이 뜨겁다. 아이가 남달리 똑똑하다고 생각해 영유아 시기에 책을 지나치게 많이 사주고 읽어주고 하다 보면 대화할 때 대답 대신 책 내용을 의미도 모른 채 줄줄 읊거나 밖에 나가서도 문자만 보면 무턱대고 외우려 하는 유사자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많은 엄마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다.
사람의 뇌 용량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증가한다. 증가 속도나 주요 발달 부위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 용량은 약 350g. 성인 뇌의 25% 정도다. 3세까지는 뇌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지고 신경세포끼리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이런 발달은 뇌 전체적으로 골고루 이뤄져야 한다. 이 시기에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어주거나 글자를 억지로 익히게 하지 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뇌가 자칫 한쪽으로 편중해 발달하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하는 놀이가 고른 뇌 발달에는 훨씬 도움 된다.
4~6세에는 주로 뇌 앞부분에서 사고력과 정서가 발달한다. 새로운 경험을 많이 시키면서 호기심과 창의력을 길러주고 기본 예절을 가르치면 좋은 시기다. 언어교육에 적당한 나이는 7~12세다. 언어와 논리, 청각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가운데와 양 옆이 집중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12세가 넘으면 시각영역이 특히 발달한다. 그 또래 아이들이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도 이 같은 뇌의 발달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뇌 용량이 감당하지 못하는 독서는 아이 성장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리 아이는 밤에 잠이 잘 안 올 때면 종종 내게 같이 책을 읽자 한다. 대부분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읽어주지만 정말 피곤할 땐 "책 말고 옛날이야기 해줄게" 하고 일단 불부터 끈다. 둘이 누워서 재잘거리며 장난치다 보면 어느 새 아이가 잠이 든다. 그럴 때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책 읽어주길 귀찮아했던 게 내심 미안했는데, 뇌 발달에 비춰보면 잘못한 것만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네 살짜리 아이가 꼭 배워야 하는 건 글자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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