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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용인대 교수로 새 인생, 씨름 황태자 이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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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용인대 교수로 새 인생, 씨름 황태자 이태현

입력
2011.04.1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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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천하장사씨름대회 결승전이 열린 지난 94년 9월21일 부산사직실내체육관.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가 펼쳐졌다. 사상 유래 없는 1시간20분간의 혈투. 12판이나 겨룬 끝에 당대 최고의 씨름스타였던 백승일을 물리치고 천하장사에 오른 이태현(35)은 가장 오랫동안 민속씨름판을 호령했다.

천하장사 3회를 비롯해 이만기 인제대 교수의 기록을 뛰어넘는 백두장사 20회까지. 10대 때 모래판을 정복한 이태현은 20년 넘게 '씨름의 황태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가장 성공한 씨름스타로 명성을 날렸다.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았던 이태현은 최근 '독서와 식곤증'의 무서움과 '씨름'하고 있다. 천하장사에서 용인대 교수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태현을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4월에 만났다.

넥타이 매니 목에서 뾰루지가 올라와

196㎝, 140㎏의 거구가 책상에 앉아 있으니 교수실이 꽉 찼다. 샅바가 누구보다 잘 어울렸던 이태현 교수는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아직까지 어색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는 "그동안 넥타이 맬 일이 없었는데 항상 넥타이를 하고 다니려니 갑갑하다. 목에는 뾰루지 같은 게 올라왔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지난 3월2일부터 용인대 격기지도학과 교수로 임명된 이태현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새로운 인생에는 고통이 따른다. 이태현은 독서와 식곤증의 무서움에 빠져있다. 그는 "항상 활동적으로 살아왔는데 책을 잡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다. 책 읽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30분 마다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한다"고 털어놓았다. 식곤증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는 "운동할 때는 식사 후 낮잠을 자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참아내야 하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장사도 네티즌은 무서워

독서와 식곤증 외에도 무서운 게 또 있다. 바로 네티즌. 2006년 첫 은퇴 선언 후 격투기에 뛰어든 이태현은 네티즌의 표적이 됐다. 맞는 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후 쏟아지는 비난과 욕설에 좌절해야 했다. "씨름을 할 때는 팬들이 좋은 이야기만 했다"던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인터넷에 쏟아지는 댓글과 평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즉각적인 반응이 공포로 다가왔다. 욕을 많이 먹고 자신감까지 잃으니 나중에는 밖에 나가는 것까지 무서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씨름의 최강자였던 이 교수는 격투기무대 진출 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냉정한 네티즌의 공세 등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았다. 이 교수 본인은 "얻은 것도 많다"고 했지만 가족들에게 '눈물' 그 자체였다. 부인 이윤정(32)씨는 얼마 전 TV 방송 중에 격투기 이야기가 나오자 여전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태현의 격투기 전적은 1승2패였다.

'도시락 친구' 이원희와 인연

같은 시기에 강단에 서게 된 아테네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이원희 교수는 이태현 교수의 '도시락 친구'다. 둘의 교수실도 붙어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전화벨이 울린다. 이원희 교수의 점심 프러포즈. 이들은 선배 교수들이 많은 교내 식당보다 도시락을 시켜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또 시간만 나면 '티타임'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로서 서로 아낌없는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운동선수에서 교수가 됐다는 '공통분모' 외에도 이들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태현 교수는 한때 이원희 교수를 '선생님'으로 모셨다. 이태현 교수는 "격투기로 전향했을 때 조르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원희에게 기술 전수를 부탁했다. 하지만 원희는 기술을 전수한다고 하더니 매트 위에서 조르기에 바로 들어가 죽을 뻔했다"며 "원희는 기술 전수보다는 자신이 그냥 즐기는 것 같았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용인대 최고의 씨름 명가로

씨름과 스포츠상해재활 교과목을 맡고 있는 이태현 교수는 일주일에 15시간을 강의한다. 이론과 실기 반반이다. 특히 이 교수는 이론 준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한 학기 커리큘럼이 이미 나왔지만 이론을 가르치면서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책도 많이 읽으면서 참고할 자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그는 최근 두꺼운 이론 서적을 달고 산다. 책을 별로 사본 적이 없었던 그는 3권에 1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비싼 책값'에 혀를 내둘렀다.

현역 시절의 무용담도 벌써 동이 났다. 그는 "강의 첫 시간에 씨름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모두 써버렸다. 학생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 수 있는 소스가 동이 나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활달한 성격의 그는 이미 '만담꾼'이 다 됐다. 기자가 질문을 하지 않아도 10분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이 교수 스스로가 "입만 살았다"고 할 정도.

모래판을 떠났지만 이 교수의 꿈은 '씨름'에 있다. "선수보다 힘든 게 감독이다. 서서 있거나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려니 죽을 맛이다. 이제 용인대를 맡은 만큼 이태현의 이름을 걸고 용인대를 씨름 명가로 만들겠다."

용인=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이태현 프로필

생년월일 1976년 1월17일

신체조건 196㎝, 140㎏

출신 경북 김천

출신교 의성고-용인대-용인대 석ㆍ박사

민속씨름 데뷔 1993년

주요경력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백두장사 20회(역대 최다)

격투기 전적 1승2패

직업 용인대 격기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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