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걸
점자책을 펼치니
와르르 쏟아진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흩어진 점자를 더듬어 가는데
들려온다, 별들의 이야기
팽팽한 점자처럼 별들도
광활한 우주 속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기에
거대한 경전을 읊는 것이라고,
밤새 소곤대는 별들을 따라 걷다 보니
짓무른 손가락 끝이 화끈거리고
어깻죽지 목덜미가 뻐근하지만
몸속에 알알이 박힌 별들 탓일까?
창문 너머 별빛 점자를 찍어가는
가파른 새벽 발소리
맨홀 속 은하수, 물소리도 환하다
● 시인은 15년 전에 시력을 잃었다. 시력을 잃고 란 서럽고도 긍정적인 제목의 시집을 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가슴에 점자가 찍힌다. 아니, 돋는다. 점자(빛을 볼 수 있어, 볼 수는 있었으나 읽을 수는 없던 문자. 그러나 어둠 속에서 대면하면 읽을 수는 없어도 더 잘 만져지던 문자)는 가슴에 침처럼 박혀 피를 더 웅숭깊게 순환시켜준다.
손가락 눈동자가 짓무를 때까지 시인은 빛의 이야기, 별들의 이야기를 읽네요. 별들의 이야기를 만지고 또 만져 별들이 빛나는 것을, 별들이 거대한 경전을 읊는 것이라 간파해내네요. 한 점 한 점 모여 글자가 되는 점자처럼 우리 삶도 제자리 지키는 각자의 삶을 모두 합하면 거대한 경전이 된다고 깨닫네요. 급기야 삶의 흔적들, 촘촘함을 넘어 합류해 흐르는 맨홀 속 물에 환한 은하수를 띄우네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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