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미국의 출판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 2위의 서점체인점 보더스 그룹이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이다. 1971년 개업한 보더스는 미국 내 640여개 지점망을 가진 대형 서점인데, 지속적인 판매 부진으로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매장의 3분의1을 폐쇄하기로 하였다.
보더스 몰락의 원인은 급속하게 성장한 전자책 시장에의 늦은 대응 때문이었다. 경쟁서점인 반스앤노블이 전자책 단말 '눅'(Nook)을 자체 개발하는 등 시장에 빠르게 대응한 반면, 보더스는 아무런 대응책을 세우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 태블릿PC의 출시는 보더스를 더욱 궁지로 몰아 넣었다. 태블릿PC나 전차책 단말기를 통한 전자서적 이용이 증가하면서 서적 판매량이 1년 만에 30%나 급감한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도 신문업계가 초비상이다. 종이 신문의 발행부수가 점점 감소하고,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세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라면 향후 7~25년 이내에 모든 신문사의 매출이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역시 원인은 태블릿PC였다.
태블릿PC, 미디어 콘텐츠 소비행태를 바꾸다
태블릿PC는 일반 소비자의 콘텐츠 소비성향을 '읽기'에서 '보기'로, '분석적'에서 '직관적'으로 변화시켰다. 태블릿PC에 제공되는 신문이나 잡지의 콘텐츠를 보면 빽빽한 텍스트 대신 선명한 화질의 사진 및 동영상과 터치를 유도하는 자극적 제목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다.
또 소비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만의 맞춤형 정보를 소비하는데, 대표적 서비스가 아이패드 전용 앱인 '플립보드(Flipboard)'이다. 이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보 습득의 통로가 신문, 방송 등 기존 매체가 아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이다. 신문, 방송보다 지인들이 링크해 준 정보에 더 의존하는 셈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각에선 미디어산업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콘텐츠 소비의 행태가 변할 뿐이지 미디어산업 자체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미디어들은 IT기술이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이용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언론의 황제 루퍼트 머독도 애플과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애플과 손잡고 아이패드 전용 신문 '더 데일리'를 출간했다.
더 빠른 태블릿PC, 콘텐츠 소비 영역을 확장하다
지난달 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아이패드2가 미국에서 출시되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A5 프로세서를 탑재한 아이패드2는 유튜브, 게임, 브라우저 실행 속도에 있어 1세대 아이패드를 월등히 능가한다.
태블릿PC의 눈부신 성능 진화는 동영상 콘텐츠 소비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또 신문과 잡지 역시 동영상 콘텐츠 영역을 더욱 강화해 소비자들의 오감을 최대한으로 자극할 것이다. 이에 따라 차세대 태블릿PC는 콘텐츠 소비를 '보기'에서 '즐기기'로 진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미국의 2위 케이블TV업체인 타임워너케이블은 아이패드를 보유한 자사 케이블TV 가입자에게 수십 개 HD방송채널을 무료 제공하기로 했고, 3위 업체인 케이블비전 역시 300개 채널을 아이패드를 통해 제공하기 시작했다. 최대 DVD 대여업체인 넷플릭스와 인터넷TV 훌루(Hulu)도 아이패드 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CJ헬로비젼의 스트리밍TV 서비스 '티빙'이 아이패드상에서 제공되고 있는데, 가입자가 140만명을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송을 보기 위해 집으로 달려갈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태블릿PC로 편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태블릿PC로 신문을 읽고 잡지를 보고 TV를 시청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콘텐츠들이 등장할 것이다. 종이가 처음 발명되어 인류 역사가 한 단계 진화했듯이, IT로 인해 미디어 콘텐츠는 새롭게 탈바꿈할 것이고 인류는 또 한번 진화의 계단을 밟게 될 것이다.
● 플립보드(Flipboard): 아이패드용 소셜미디어 편집 애플리케이션. 이용자가 가입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게재된 글을 참고해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를 엮어 잡지형태로 보여준다. 애플 아이패드가 발표한 '2010년 최고의 앱(App of the Year)'으로도 선정되었다.
김재필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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