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디난 등 지음ㆍ노승영 옮김
시대의창 발행ㆍ528쪽ㆍ2만8,000원
2004년 1월 9일 권위 있는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스코틀랜드 양식 연어에 들어 있는 독성 화학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PCB)을 비롯한 기타 화학물질의 양이 미국 환경보호국 권장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바로 그날 스코틀랜드의 일간지에는 ‘양식 연어 섭취가 암 발생 늘린다’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어류의 화학물질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환경단체에서 연어 연구에 자금 지원’ ‘연어 보고서에 결함과 편향이 있다’…, 마지막 기사 제목은 이랬다. ‘과학자들, 어류가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은 사실과 반대’. 그 결과, 논문의 정당한 문제 제기는 금세 묻혀 버렸고, 소비자들의 의식 속에 찜찜한 여운으로만 남았다고 한다.
이 과정은 물론 양어장을 운영하는 초국적 산업자본이 벌인 전방위적 반격의 결과다. 반격의 전위에 섰던 학자 관료 등 전문가들은 연구에 지원금을 제공한 재단의 의도를 문제 삼고 오염 물질 측정 방법론의 결함을 공격했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기업 홍보는 우리가 선의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교묘하며, 심지어 부도덕한 경우가 많다고 이 책의 저자들은 주장한다. 심지어 기업 권력의 언론플레이를 민주주의의 실질적 위협 세력으로 겨냥한다.
스핀 닥터란 정보 조작 전문가란 뜻이다. 학자 시민운동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이 책의 필자들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홍보 전문가가 부정적 의미의 스핀닥터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책은 기업 홍보의 다양한 측면과 진짜 의도를 초국적기업들의 스피닝(정보 조작) 사례들을 통해 파헤치고 있다. 책에는 위에서 예로 든 양식업계 외에 미국 공화당의 공공 홍보 컨설팅 전문업체인 DCI그룹, 석유산업이 환경 및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왜곡시켜 온 석유메이저를 비롯, 코카콜라, 농업기업인 몬산토 등 사례가 실려 있다. 기업을 공격하는 반대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미디어용 시위를 조직하고, NGO에 소속된 전문가의 신뢰성 및 도덕성을 공격하고, 심지어 우익 테러단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독립성을 앞세운 싱크탱크들이 어떻게 기업의 이익에 복종하는지도 신랄하게 까발려진다. 저자들은 기업 권력의 홍보 영향력에 맞서 소비자의 권익을 신장하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터넷 및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 다양한 활동과 지침도 제시한다.
낯선 고유명사들이 많이 등장하고 정황들이 세세하게 설명돼 있어 읽기 썩 편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스피닝의 은밀한 작동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소설보다 더 추한 현실에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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