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 7일 서울 시민들은 평소 쓰는 우산보다 큰 우산을 받쳐들고도 비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 탓이다. 다만 언론 등을 통해 관련 소식이 일찌감치 예고된 덕인지 준비를 철저히 해 큰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갈팡질팡한 건 오히려 정부 당국이었다.
시민들 꼼꼼한 준비로 차분한 하루
이날 아침 서울 제동의 한 초등학교 등굣길. 홀로 우산을 쓴 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승용차로 데려다 주는 부모들의 모습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2학년 학생의 한 학부모는 “이 정도 비로는 우산도 없이 등교를 할 텐데 아이가 어려 아무래도 걱정이 돼 핸들을 잡았다”며 “교실에 들어가서는 손을 다시 씻으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고 있던 이 학교 교감은 “비가 가늘어 다행이지만 학부모들 걱정이 많아 비를 맞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회사들이 밀집한 종로와 강남의 출근길 풍경도 평소 비 내리는 날과 다르지 않았다. 종로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34)씨는 “이 정도 비면 그냥도 다니는데 방사능 비라고 해서 우산은 챙겨 왔다”며 “지금 상황에서 복잡한 길을 가는데 우산을 펼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이모(26)씨도 “평소보다 우산이 큰 것 외에 방사능 비에 달리 준비한 것은 없다”고 했다.
대신 한낮 거리의 풍경은 크게 달랐다. 빗방울이 가늘어 외부 활동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씨 불문하고 인산인해를 이루던 명동 거리는 텅 비었다. 오후에 만난 화장품매장 직원 조모(24)씨는 “이 시간이면 매장 안에 10명 넘는 손님이 있어야 하지만 오늘은 너무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귀찮을 정도로 많은 전단지 돌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인근 편의점의 한 직원은 “전기를 끓어다 쓰는 노점상 중에는 이 정도의 비라면 포장을 치고 장사를 할 텐데 오늘은 하루 쉬겠다는 연락을 해왔다”며 “방사능 비 영향이 큰 거 같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오후 4, 5시가 될 때까지도 우산 판매상을 제외한 노점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산 판매상 김모(72)씨는 “방사능 비 소식에 다들 우산을 챙겨와서 평소보다 장사가 안됐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정부와 교육당국은 오락가락 뒷북 행정
꼼꼼한 준비로 차분한 모습을 보인 시민들과 달리 정부와 교육당국은 종일 허둥대는가 하면 뒷북을 연발하기도 했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휴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경기도교육청은 이 같은 방침을 각 지방교육청에 뒤늦게 하달하는 바람에 학부모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경기 군포시의 한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한 어머니는 “등원 10분전에 교사로부터 휴원을 통보 받았다”며 “교육청에 계신 분들은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던 방사능 비 소식을 어제 저녁 무렵에서야 알았냐”고 쏘아 붙였다.
이 유치원은 이날 연락을 늦게 받아 유치원에 등원한 아이들을 받느라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해당 유치원은 이날 새벽 1시에 팩스로 관련 사실이 들어왔고 아침에 출근한 직원들이 이를 확인하고 부리나케 학부모들에게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전날 오후 8시10분에 관련 공문을 보냈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자정 전에는 각 학부모들에게 연락이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휴교령을 내리지 않은 서울시교육청도 허둥대기는 마찬가지. 방사능 비 소식은 진작에 알려져 있었지만 이날 오전에서야 관할 학교에 “야외학습 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하달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날 오후 뒤늦게 전국 16개 시ㆍ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휴교를 할 경우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 신중히 이뤄지도록 지도할 것”을 주문해, 학부모들로부터 “무책임의 극치”라는 원성을 샀다.
전국의 정수장을 관리하는 환경부도 뒷북을 쳤다. 비가 내리고 있던 이날 오전에서야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수도사업자에게 노천 정수시설을 보호할 수 있는 비닐 포장막 설치 등의 대책 강구를 긴급 지시한 것. 서울의 한 정수장 관리자는 “정부로부터 지침을 받긴 했지만 비가 내리는 와중이라 6개의 노천 정수장을 덮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며 “방사성 요오드 흡수를 위한 분말 활성탄을 넣은 게 전부”라고 털어놨다. 이 정수장은 비가 그친 이날 밤에서야 방수천 재질의 덮개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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