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집 를 남긴 전혜린(1934~1965)은 '불꽃같은 삶을 산 천재'였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독일에 유학해 독문학을 했고, 귀국해서는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녀는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교수, 수필가에 좋은 번역자로도 알려졌던 그녀가 빼어난 단편 작가 오영수(1914~1979)의 소설 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다. 전씨는 청상과부 해순에게 반한 상수가 "니캉 내캉 살자!"고 외치는 대목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며 작가에게 상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신경숙 영문판 소설의 성공
그냥 함께 살자는 평범한 표준어 프로포즈라면 어려울 게 없지만 억양이 강하고, 단순해서 더 힘이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살리면서 독일인들이 알아듣게 말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오영수 씨가 뭐라고 답했으며 실제로 어떻게 번역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번역은 전적으로 번역자의 몫일 뿐 원작자가 간여하기 어렵다. 글을 쓴 사람으로서 의견을 밝힐 수는 있지만, 번역자가 고심하고 있는 언어 변환과 이해ㆍ소통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최근 문인 몇 명이 모여 번역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한 소설가가 자기 작품에 나오는 이삿짐 트럭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의 경우 짐칸에 올라 타고 가는 게 흔한 일이지만, 이를 그대로 번역할 경우 프랑스 사람들은 사람이 짐칸에 타고 가는 무개트럭을 이해하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번역자가 묻더라는 것이다.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이 소설가는 주(註)를 붙이면 어떻겠느냐고 대답했다는데, 번역자로서는 주를 붙이는 게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고 한다.
그 언어권의 독자들이 알기 쉽게 말과 단어를 현지 식으로 바꾸는 게 좋은지, 아니면 별도의 주를 붙이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말을 살리면서 옮기는 게 좋은지 설왕설래가 이어졌지만, 뚜렷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거니 번역은 반역이라거니 하는 말은 그만큼 번역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경숙의 소설 가 미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원작의 힘에 좋은 번역이 더해진 덕분일 것이다. 2008년 10월 한국판이 나온 뒤, 이 작품의 영역을 맡은 김지영 씨는 작가와 1년 가까이 많은 대화를 하면서 영어문장을 다듬었고, 그 결과 번역서 같지 않고 처음부터 영어로 쓰인 것처럼 잘 읽히는 책 을 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노벨문학상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에게는 번역이 늘 문제다. 좋은 번역은 원래 문장처럼 어색하지 않은 것인데, 그러려면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오가며 살아온 김씨처럼 한국어와 현지어에 모두 모국어처럼 능통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갖춘 자원은 흔하지 않다.
의 성공은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이 한 단계 더 올라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30~40년 전과 비교하면 번역자들은 그래도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종전에는 막걸리를 그대로 쓸 수 없어 '쌀로 만든 코리안 와인' 식으로 돌려 말해야 했고, 김치도 발음 그대로 표기는 하되 그것이 무엇인지 따로 설명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김치, 막걸리라고 그대로 옮겨도 무방하다고 생각될 만큼 한국과 한국적인 것이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번역자 발굴ㆍ지원 더 노력을
미국의 경우 전체 도서 중 번역서는 3%, 번역 문학작품만 따지면 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한국 작품이 지속적으로 호평을 받으려면 번역이 훌륭해야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언어권 별로 선정하는 '지정 번역가'제를 확충해 좋은 인력을 더 많이 발굴하고 지원액수도 늘려가야 할 것이다. 한국인ㆍ외국인 2인 1조로 구성되는 번역팀 운영방식의 개선도 검토해야 한다. 번역을 잘하면 나라가 커지고, 나라가 커지면 번역이 쉬워진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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