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강경 대동맥 수술 선구자국내 유일 복강경 대동맥수술고령 환자도 빠르게 회복시켜
충남 천안에 사는 김모(73)씨는 걸을 때마다 엉덩이와 허벅지, 장딴지가 아파 고생했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심하게 아파 한걸음을 떼기도 힘들었다. 잠시 쉬면 괜찮아져 그럭저럭 참으며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20m도 걷기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막연히 척추 문제 때문이려니 생각했는데, 뜻밖에 동맥경화로 인한 대동맥폐색증 진단을 받았다. 복부 대동맥이 막혀 혈액이 다리까지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배를 자른 뒤 막힌 혈관을 우회해 인공 혈관으로 이어주는 큰 수술이 필요하다. 가족들은 일흔을 넘긴 김씨가 큰 수술을 견뎌낼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이태승 분당서울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배를 크게 절개하지 않고, 열쇠구멍 만한 구멍을 5개 뚫고 하는 복강경 대동맥우회술을 시행했다. 개복 수술했다면 20㎝ 정도의 큰 상처로 인해 심하게 아팠겠지만, 김씨는 수술 다음날 유동식을 먹고 신문을 읽을 정도로 빨리 회복했다.
고령 환자 대부분인 대동맥 질환, 복강경시술로 부담 줄여
이 교수는 대동맥내시경 수술의 선두다. 2004년 국내 최초로 복강경 대동맥 시술에 성공했고, 지금은 대동맥우회술을 대부분 복강경으로 시술하고 있다. 2008년에는 처음으로 수술용 로봇 '다빈치'로 대동맥수술을 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 교수가 최소 침습 대동맥 수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동맥 환자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이었다. 복부 대동맥 질환은 고령인에게 흔히 나타나는데 개복수술은 고령 환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개복수술로 막힌 혈관을 뚫어줘도 수술 후 통증으로 호흡기나 심장, 장에 합병증이 생겨 회복이 더디다. 반면, 복강경 대동맥 시술은 덜 아프고, 시술 도중 장을 자극하지 않아 장 기능이 금방 회복돼 음식을 빨리 먹을 수 있다. 5배 확대된 영상을 통해 신경이나 작은 혈관까지 자세히 살펴보면서 시술하므로 정상조직을 거의 손상하지 않는다.
시술 결과도 더 우수하다. 개복수술로 대동맥 폐색수술을 하면 10년 후 인공 혈관을 유지할 확률(개존율)은 80%다. 그런데 이 교수가 지난 7년간 복강경을 이용한 대동맥 폐색시술한 결과를 관찰한 결과, 10년 후 인공 혈관 개존율이 88%로 개복수술보다 좀 더 높았다. 복강경 대동맥 시술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유수 병원에서만 이뤄질 정도로 무척 어려운 시술이다. 국내에서 대동맥수술을 복강경으로 할 수 있는 의사는 이 교수뿐이다.
-혈관질환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혈관질환이라면 뇌혈관질환과 관상동맥질환을 떠올리지만, 상당히 광범위하다. 혈관외과에서는 뇌와 심장혈관을 제외한 모든 동맥과 정맥, 임파관에 생긴 혈관질환을 다룬다. 하지정맥류나 심부정맥혈전증 등 정맥질환은 비교적 치료하기 쉽고,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말초동맥질환이다. 복부대동맥, 엉덩이동맥, 넓적다리동맥 등이 동맥경화로 인해 막히는 대동맥 폐색이 생겼으면 자칫 다리를 자를 수도 있다. 또한 혈관벽이 꽈리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복부 대동맥류가 생겼다면 파열돼 자칫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문제는 이 질환이 평소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병이나 가족력 등 위험인자가 있다면 정기 검사를 해야 한다."
-대동맥 폐색은 왜 생기나.
"동맥경화가 원인이다. 대동맥은 혈관 중에서 가장 크고 피가 많이 지나가는 혈관이다. 복부 대동맥은 골반에서 장골동맥으로 분리돼 혈액이 소용돌이치면서 다리로 피를 보내는데, 이 때 지질 등이 혈관벽에 쌓이면 대동맥이 막힌다. 이 질환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므로 환자의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다. 양쪽 장골동맥이 좁아진 경우에는 약물이나 혈관 내 치료를 시도하지만, 복부 대동맥과 장골동맥이 같이 막혔다면 대동맥우회술을 해야 한다."
-동맥경화가 다리에도 생기나.
"동맥경화는 어디 부위에든 생길 수 있다. 다리에 동맥경화가 생기면 다리가 차가우며, 걸을 때 아프다. 엉덩이동맥이 막혔으면 남성은 발기부전이 될 수도 있다. 흔히 혈압은 팔에서 재는데, 다리에서도 잴 수 있다. 다리는 혈관이 길고, 혈액의 힘이 더 강하므로 팔보다 혈압이 20㎎Hg 정도 더 높다. 다리 혈압이 팔 혈압보다 낮으면 동맥경화가 다리에 생겼는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50대 이상으로, 담배를 피운 적이 있거나, 당뇨병이 있다면 다리 혈류를 검사하는 것이 좋다."
-다리 동맥경화는 어떻게 치료하나.
"요즘은 혈관 내 치료를 많이 한다. 허벅지 동맥을 통해 풍선이 달린 가느다란 관을 넣어 좁아진 혈관에 금속 그물망을 집어넣어 혈관을 넓히는 방식이다. 특히 당뇨발(당뇨병으로 인한 족부궤양) 환자는 무릎 관절 아래로 동맥경화증이 생기는 사람이 많다. 이럴 때에는 염증 치료와 혈관 내 치료를 함께 하는 협진수술을 한다. 그러나 동맥 폐색과 협착이 관절에 생겼거나 폐색과 협착 부위가 길다면 다른 부위의 혈관으로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혈관은 우리 몸에서 산소와 영양분, 노폐물 등을 옮기는 통로다. 따라서 어느 한 곳만 막혀도 심각한 병이 생긴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비만, 고지혈증 등 생활습관으로 인해 생기는 성인병의 대부분이 혈관과 관계 있다. 혈관을 건강히 유지하려면 산화질소(nitric oxide)가 적당히 필요하다. 산화질소는 인체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혈관에 혈전이 쌓이는 것을 막아 혈관 질환을 예방해준다. 심박동 수가 늘어나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 혈액 흐름이 빨라지면서 산화질소가 만들어진다. 혈관을 건강히 유지하려면 주 1회라도 심박동 수를 늘려주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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