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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나무와 씨앗들을 위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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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나무와 씨앗들을 위한 예배

입력
2011.04.0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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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키 높이 정도 자란 산수유나무 한 그루를 얻어 은현리 청솔당에 심으려고 도착하니 왁자지껄하다. 함께 텃밭을 가꾸는 분들이다. 청솔당을 내게 세준 주인 부부가 다니는 교회 분들로 여러 번 만나 인사를 나눈 반가운 얼굴들이다. 그 중에 내가 은현리에 입문하는데 멘토(Mentor) 역할을 해 준 강현이도 있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멘토는 지금은 대학을 다니다 육군 고참 상병으로 근무 중이다. 도심의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 겨울 추위에 움츠리고 지내던 나보란 듯 어린 강현이는 은현리의 겨울을 맨발로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충격에 강하게 살고 싶어 은현리로 들어왔다. 그분들이 감자를 심으려고 한 내 몫의 텃밭까지 고맙게도 갈아엎어 놓았다. 뿌려 놓은 퇴비내음이 구수하다. 산수유나무를 텃밭 귀퉁이에 심고 물을 듬뿍 주었다. 이미 꽃을 달고 이사 온 산수유나무는 내년 봄 일찍 꽃을 피울 것이다. 내게 산수유나무 한 그루 심는 것은 오랜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좋았다. 그분들도 상추, 쑥갓 등의 씨앗을 묻고 물을 뿌렸다. 모두 흙과 씨앗과 나무로 하여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분들을 청솔당에 모셔 오늘 우리가 가꾼 생명들에 대한 축복의 기도를 청했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그분들의 독실한 신앙심을 알기에 청솔당 첫 예배가 있었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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