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하숙을 했던 대학생 이지영(22ㆍ가명)씨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도록 방을 구하지 못해 인천의 이모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월 40만원에서 65만원으로 오른 하숙비가 부담돼 방을 뺐지만, 전에 살던 방세로는 학교 주변 하숙집은 언감생심. 결국 이씨는 비슷한 처지인 같은 과 1년 후배와 함께 방세를 나눠 내기로 하고 부천에서 보증금 400만원에 월 40만원짜리 원룸을 구해 원거리 통학을 결정했다.
직장인 전세난민들이 대학가로 유입되면서, 대학생들은 하숙난민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전세난 여파로 대학가 주변 하숙집에 도심 전세난에 떠밀린 직장인 전세난민들까지 밀려들면서, 갈 곳을 잃은 대학생들은 더 싼 곳을 찾아 난민신세가 된 것이다.
서울시내 대학 재학생은 어림잡아 27만여명. 이 중 절반 이상인 14만명 가량이 지방 유학생들이다. 대학 기숙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통상 전체 지방 학생수의 약 10%가 조금 넘는 점을 감안하면, 고향을 떠나온 12만명 이상의 지방 유학생(遊學生)들이 졸지에 학교 주변 외곽으로 떠밀리는 '유학(流學)'신세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대학원생 박정현(31)씨도 최근 폭등한 학교 주변 전ㆍ월셋값 탓에 서울 행당동에서 의정부로 밀려난 경우. 박씨는 "집주인이 보증금 1,2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던 월세방을 작년 말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65만원으로 올리면서 집값을 맞추지 못해 이사가 불가피했다"며 "자취하던 대학원 친구의 20~30% 정도는 학교 주변에서 경기 외곽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행당동 삼성공인 이영철 실장은 "전세난이 심각해지다 보니 소형아파트나 오피스텔보다 값이 싼 대학가 원룸 등은 자금여력이 상대적으로 나은 직장인들이나 신혼부부로 채워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결국 돈 없는 자취ㆍ하숙생들은 저렴한 수도권으로 빠지거나 동거 등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박해진 하숙방 인심도 대학생들에겐 부담. 흑석동에서 하숙을 하다 올 초 안양의 원룸으로 이사한 대학생 한모씨는 이른바 '깔세'(계약기간 해당되는 월세를 일시에 내는 것) 계약에 떠밀린 경우다. 집주인이 40만원이던 하숙비를 60만원으로 올리면서 6개월치 월세도 한꺼번에 내라는 조건을 달아, 별 수 없이 학교와는 멀지만 전과 비슷한 조건의 방을 찾아 옮긴 것. 그는 "언제부턴가 하숙비에 보증금이 깔리리 시작했고 식사까지 제공됐던 하숙집 모습은 조금씩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며 "20만~30만원씩 오른 방값 대신 식사 제공 조건을 빼는 '마이너스옵션' 계약을 해야 해 사실상 하숙비 인상이 강요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취생 김성원(27)씨는 "대학을 상징하던 상아탑이 소를 팔아 자식 대학을 보냈다던 '우골탑'에서 최근엔 등록금 때문에 부모 등골이 빠진다는 '인골탑'으로 바뀌더니 이젠 쪽방에 쪼그려 자야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쪼글탑'이란 푸념까지 학생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역세권 주변의 도심형생활주택이 본격 입주하고, 중소형 아파트 공급이 확대되면 대학가 전월세난도 숨통을 트게 될 것"이라며 "당장은 LH가 대학가 인근 주택을 매입해 저소득층 대학생 자녀를 대상으로 공급키로 한 대학생 보금자리주택이나 서울시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 수준에 아파트의 일부 공간을 부분적으로 임대해주는 방안 등에 기대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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