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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엄마들이여, 책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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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엄마들이여, 책을 버려라

입력
2011.04.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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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독서란, 독사 한 마리씩 길들이는 일'이다. 시인 남진우 씨의 시 '독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책에는 읽는 이에게 충만감과 행복감을 주는 지식과 서사가 있다. 그래서 책과 독서는 부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이자 행위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가치 때문에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하루 아침에 인간의 사고를 송두리째 바꾸고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책에 독이 발린 사실을 알면서도 침을 묻혀 가며 책장을 넘기는 시인의 모습은 책과 독서의 극단적 매력에 대한 예찬이자 경고일 것이다.

조기 독서에 몰두하는 엄마들

지난주 한국일보는 조기 과다 독서가 아이들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사를 보도했다. 반응은 엄청났다. 삽시간에 인터넷 기사에 2,0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리고, 트위터 페이스북에서는 기사 공유와 의견 교환이 확산됐다. 엄마들은 유아ㆍ보육ㆍ독서 카페나 블로그에 기사를 올리고 생각과 의견을 나눴다. 자녀 교육에 민감한 사회상이 새삼 놀라웠다.

수많은 댓글과 트윗글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어릴 때 많은 양의 독서가 아이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최고ㆍ최선의 교육이라는 믿음이 부모들 사이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아에게 하루 20~30여 권의 책을 읽어 준다는 엄마, 두 살배기를 위해 수십만 원짜리 그림 위인 전집을 주문했다는 엄마, 세 돌이 지난 아이에게 한글ㆍ한자ㆍ영어ㆍ수학 교육을 시킨다는 엄마 등 조기 독서 교육에 몰입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에게 전집으로 꽉 채운 책장, TV도 안(못) 보고 종일 책만 읽는 아들, 이가 나면서부터 가갸거겨 ABCD 했다는 딸은 가슴 뿌듯한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추측컨대 그런 자부심과 '똑똑하다'는 주위의 찬사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더 강화했고, 부모들은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린 자식들에게 더 많은 독서와 공부를 시켰을 것이다. 그런 부모들에게 취학 전 과다 독서가 오히려 두뇌 발달을 저해하고 극단적으론 초독서증에 유사 자폐 증상까지 낳을 수 있다는 사례를 제시했으니 놀라움이 컸을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는 엄마들의 회한과 탄식이 흘러 넘쳤다.

그러나 조기 과다 독서가 뇌 활동과 발달을 해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교육계와 의료계에서 꾸준히 제기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엄마들이 새삼 충격을 받은 것은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패자에게는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는 무한 경쟁의 가치만이 떠받들어지는 나라, 이른바 명문대를 나와야 인정 받고 출세하는 사회구조, 사교육 안하고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입시제도, 아이들 교육을 학원에 맡긴 무기력한 공교육 등 자녀 교육의 방향과 강도를 좌우하는 변수 때문에 부모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동화책을 줄줄 읽고 영어도 곧잘 하는 아이를 보면 경쟁심과 조바심이 발동해 자식 조기 교육에 더 매진했을 것이다. 자신이 못 이룬 꿈, 살지 못한 삶을 자식이 반드시 이루고 누리게 하겠다는, 대리 충족 욕구도 작동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과다 독서가 뇌 발달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나 했을까. 자식을 남보다 우월하게 키우려는 욕구는 경고의 메시지조차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만드는 기제가 되지 않았을까.

아이 위해 불안ㆍ조바심 버려야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게 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댓글이 많이 올라온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고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소름 돋는 학벌ㆍ경쟁 지상주의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 게 분명하다. 부모의 본격적인 싸움은 그때부터다. 일찌감치 아이를 지치고 병들게 할 것인지, 어리지만 인격체로서 모든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세상에 이보란 듯 자신의 욕심과 불안부터 과감히 던져 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책이, 그리고 독서가 독사가 되어 내 아이를 물지 않도록 말이다.

황상진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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