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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공약은 공약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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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공약은 공약일 뿐"

입력
2011.04.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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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공약에 관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풀이는 첫머리가 이렇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대중에게 하는 약속, 선거 공약(election promise)은 선거의 핵심 요소이다. 또 선거 공약은 당선 뒤 흔히 지켜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규정에 어울리게 첫 항목도'지키지 않은 공약(Broken promises)'이다. 숱한 선거 공약이 이행되지 않는 탓에 정치 불신과 무관심을 부추기지만, 선거가 있는 한 공약 불이행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기까지는 상식 수준이다. 그 다음이 우리 현실에 비춰 되새길 만 하다.

선거 전 공약은 원래 장미빛

정치인들은 왜 지키지 못할 공약을 할까. 과장된 공약을 하지 않는 정치인과 정당은 유권자들에게 특색 없고 무미건조하게 비칠 수 있다. 과장된 공약을 하는 후보들이 진실한 후보보다 선거에서 유리할 수 있다.

미국 선거에서는 감세(減稅)와 복지확대, 균형재정이 단골 공약이다. 셋을 함께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부 재정은 아주 복잡해 언론과 대중이 세가지 공약은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셋을 동시에 공약한다.

게다가 선거 공약은 튼튼한 경제와 의회ㆍ지방자치단체의 협조 등 장미빛 미래를 예상한다. 반면 정부는 최악의 미래를 상정해 정책 계획을 짠다. 공약이 그대로 실행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들처럼 조심스러운 공약은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없다. 그래서 공약은 장미빛일 수 밖에 없다.

공약 논란에 늘 등장하는'아버지 부시'대통령은 1988년 대선에서 유명한 "Read my lips: no new taxes"공약을 외치며 당선됐다. 공화당후보 수락연설의 하이라이트로 기록된 이 말은"결단코, 증세(增稅)는 없다"는 다짐이다.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공약은 승리에 발판이 됐다.

그러나 취임 뒤 불황과 재정적자에 몰린 부시는 1990년 증세를 단행한다. 불가피한 사정을 설명하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다음날, 뉴욕의 대중지 는"Read my Lips: I Lied"라고 선정적 표제를 내걸었다. "난 속였어요"라고 자백한 꼴이라고 조롱한 것이다. 이 일로 부시의 지지율은 20% 넘게 추락했다가 걸프전으로 다시 치솟았다. 하지만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클린턴 후보는 이 문제를 부각시켜 여러 스캔들에 얽힌 자신의 신뢰성 부족을 상쇄하는 효과를 거뒀다. 부시가 재선에 실패한 주된 요인의 하나이다.

이 사례를 공약 파기의 엄중한 교훈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세상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1988년 미국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의 최대 과제는 레이건 행정부 8년 동안 13차례 증세를 단행한 이미지를 지우는 것이었다. 공화당 후보들은'No new taxes'서약에 앞다퉈 참여했다. 부통령을 지낸 부시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후보수락 연설문의"Read my lips"대목도 지우려 했다고 한다. 단호한 공약은 집권 후 족쇄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공약 자체보다 부시의 카리스마 부족을 메우기 위해 단호한 연설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끝내 이겼다. 그리고 성공했다.

유권자 선택에도 영향 적어

공약을 어긴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부시는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재정지출 축소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증세를 고집, 예산안 통과를 막았다. 진통 끝에 증세안에 타협한 부시는'최악의 공약 파기 대통령'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재선에 장애가 될 것을 감수하고 국가 장래를 위해 희생적 선택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논란에서 유념할 것은 실제 선거에서 특정 공약은 유권자들의 선택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이념 경륜 능력 정직성 등을 훨씬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그게 공약을 곧이 믿고 선택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 공약은 공약일 뿐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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