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좋은 옷 좋은 소품을 걸치게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사치 부리는 역이 별로 없었는데. 못했던 거 실컷 할 수 있게 돼 소원 풀었죠. 그렇지만 변해가는 모습이 잘 어울리기보다는 남의 옷 입은 것처럼 어색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친부모를 찾아 부잣집 딸로 운명이 바뀐 황금란 역의 이유리(31)는 그동안 착한 여자 역할의 대명사였다. 순종적인 며느리 역할만 여덟 번 했다. 가난한 역할을 맡아도 명품을 휘감고 나오는 여배우들 사이에서 배역에 맡는 차림을 고집하다 보니 촌스럽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20대에 미모를 뽐낼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이 배우, 그래서 맘껏 예뻐 보일 수 있는 이번 역할에 좀 들떴다. “그냥 신나더라고요. 귀고리 하나 고르는데도 한참 걸리죠. 변해도 금란이는 금란이다, 그걸 놓치지 말자,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마음이 자꾸 들떠요.”
지난달 31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이유리를 만났다. 마침 금란이 평창동 본가로 들어가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대목을 찍고 있는 터라 정성스레 머리 세팅도 하고 옷도 화사하게 차려 입었다. 연기 결도 달라졌다. 친부모 앞에서는 한없이 착하다가 자신과 운명이 바뀐 정원(김현주)을 향해서는 독기를 내뿜는 금란의 이중적인 모습은 좀체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기존 악역과는 좀 다르다. 말하자면 ‘이유 있는 악녀’다.
“악역이란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길러준 엄마(고두심)를 너무 사랑하지만 처절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사채업자들이 판) 무덤까지 들어갔다 온 애잖아요.” 대본을 보면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많아지고 표현도 점점 세지지만, 그는 자꾸 금란을 옹호하게 된다고 했다.
1999년 MBC ‘베스트 극장’으로 데뷔한 이유리는 청소년드라마 ‘학교’로 얼굴을 알리고, ‘사랑과 야망’ ‘엄마가 뿔났다’ ‘사랑해, 울지마’ 등 주로 일일ㆍ주말 드라마에 출연하며 차분하게 제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는 “연속극 많이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긴 드라마를 하면서 선생님들한테 참 많이 배웠어요. 그냥 같이 호흡 맞추는 것만으로도 다 공부가 되거든요. 고두심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진짜 금란이 엄마 같아요. 지금도 선생님 보면 그냥 눈물이 나와요. 그래서 촬영 안 할 때도 괜히 끌어안고 그래요.” 그런 이력 덕에 그는 데뷔 이후 연기력 논란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잘 못 본다고 했다. “제가 데뷔했을 때는 ‘발 연기’ 이런 단어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웃음)
이유리는 금란 역에 몰입하기 위해 평소에도 되도록 잡담을 삼가고 조용히 지낸다고 했다. “농담하다가 슛 들어가면 우울한 표정이 잘 안 나와요. 장난치는 거 무지 좋아하는데 그래서 참고 있죠. 아마 대범(강동호)이나 미란(한지우)씨는 절 차갑다고 생각할 거예요.” 촬영장에서는 유쾌한 성격을 꽁꽁 숨기고 있지만 뮤지컬 ‘친정엄마’에서는 다르다. 지난해 11월부터 주말마다 김수미와 모녀 연기를 하고 있는 그는 “소리도 지르고 막 그런 역할이라 거기서는 까불까불 해요. 너무 사랑스러운 김수미 선생님과 함께 하는 주말이 막 기다려지죠.”
이유리는 한때 주변에서 “며느리 역만 하다가 끝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들었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고 했다. “길게 보려고 해요. 요즘 통하는 매력적인 얼굴도 아니니,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생각했죠. 연기는 노력한 만큼 되니까. 그래서인지 여배우가 결혼하면 관심이 식기 마련인데, 전 오히려 결혼하고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는 지난해 9월 교회에서 만난 띠동갑 전도사와 결혼했는데, 주 4,5일은 드라마 촬영, 주말 이틀은 뮤지컬에 매달리느라 신혼을 즐길 여유가 없다. 그래도 “마음 넓은 남편이 ‘젊을 때 마음껏 하고 싶은 연기 하라’고 밀어준다”고 자랑을 잊지 않았다. 몸은 한없이 바쁘지만, 최근 문을 연 인터넷 쇼핑몰도 잘 되고 드라마 시청률도 오르는 등 좋은 일이 겹쳐 여러모로 즐겁다고 했다. “제가 원래 스트레스를 잘 안받아요. 다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서 코디가 ‘이긍정님’이라고 부르죠.”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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