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29일) 전북 김제시 우정종돈을 찾아간 기자에게 이 회사 유정수(31) 대리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소독실로 안내했다.
“샤워부터 하고 옷 갈아 입으세요.”
“감기 걸렸는데…”
“지난 겨울 영하 10도 한파에도 방문객들은 다 샤워했어요. 따뜻한 물 나오니까 걱정 마세요.”
그는 샤워실 옆 가구에서 갈아입을 트레이닝복과 점퍼를 꺼내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간혹 빼먹는 분들이 있는데, 머리도 꼭 감으세요!”
확실히 달랐다. 정원과 연못 등으로 꾸며진 농장 외관도 남달랐지만, 우정종돈의 방역시스템은 소문대로 철저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2009년 4월 ‘환경친화축산농장’으로 지정한 곳. 구제역이 전국을 휩쓰는 동안에도, 화를 면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친 기자에게 심봉구(49) 우정종돈 대표가 말했다. “돼지가 있는 돈사 내부로 들어가려면 사무실 옆에 있는 샤워실에서 한 번 더 샤워를 해야 합니다.”
사실은 이렇게 하는 게 정상이다. 한 방역관계자는 “외국에선 대형 농장이면 대부분 최소한의 자체 소독시설은 갖추고 있다”며 “농장을 하려면 최소한의 청결과 청정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도 따지고 보면 ‘재래식 양돈’출신이다. 그런 그가 친환경 축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3년 여름 초등학생이던 아들에게 농장 구경을 시켜줬을 때부터다. 아들은 분뇨와 거미줄로 가득한 축사 내부와 오물투성이 돼지를 본 뒤 미간을 찌푸렸다. “코를 막은 아들이 ‘이걸 우리가 먹어?’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마로 남과 다른 양돈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는 15억원의 정부융자에 8억원의 자비를 더해 축사를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또 축산물위해요소중점관리(HACCP, 2008년), 환경친화축산농장(2009년), 친화경축산물(2009년) 등 잇따라 정부 인증도 받았다.
우정종돈의 돼지들은 확실히 안락해 보였다. 좁은 우리 안에 돼지들이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서로 뒤엉켜, 더럽고 냄새 나는 보통의 밀집ㆍ밀식 사육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밀집ㆍ밀식사육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구제역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우리나라 사육시설 상당수가 위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축사내부는 밖과 제대로 공기가 통하지 않아, 화생방훈련장을 연상시킨다. 너무 비좁아 돼지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그래서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무는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벽과 천장 곳곳에는 거미줄이 즐비하고, 배설물이 제때 처리되지 않아 파리가 들끓는다. 냉정히 말하면, 이런 환경에서 바이러스가 없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우정종돈의 축사 4동 면적은 4,062㎡, 마리당 점유면적은 1.43㎡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정한 가축당 사육면적 기준(0.79㎡) 보다 1.8배나 넓다. 특히 비육돈(일반돼지)과 자돈(새끼돼지)은 2,325마리로, 최대사육두수제한(2,481마리)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심 대표는 “인증을 받으려면 사육두수를 줄여야 한다고 하길래 당시 돼지 200마리를 줄였다”고 말했다.
우정종돈은 양돈농장의 가장 큰 문제점인 분뇨문제를 해결한 케이스. 퇴비건조장 및 액비(돼지 대소변의 70%를 차지하는 수분을 미생물이 자연 발효해 만든 비료) 제조시설을 설치, 이곳에서 나온 퇴비로 보리 호밀 메밀 등 농작물을 재배한다. 심 대표는 “이번에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도 결국은 축산분뇨차량 때문이 아니냐”면서 “분뇨처리 시설은 투자비가 워낙 많이 들어 보급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만 양돈농장이 혐오시설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한꺼번에 모두 바꿀 수는 없는 일. 구제역 이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동물복지’에 대해 심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가는 게 옳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선진국 사례를 충분히 비교ㆍ연구해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환경적으로 키운) 우리 돼지도 막상 가격은 일반돼지와 비슷하거나 3% 정도 더 받는 수준”이라며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생산한 축산물의 판로를 확보하고 소비자도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사겠다는 의식 전환이 뒷받침되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심 대표는 농장 옆에 2013년 완공을 목표로 바이오에너지화융합시스템을 짓고 있다. 축산분뇨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 메탄 등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 농장뿐 아니라 이웃주민들에게도 공급한다는 구상. “농장이 혐오시설 이미지를 벗고, 마을과 상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농촌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보고 싶네요.”
김제=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매몰처리 대안은?
구제역으로 가축 347만 마리를 한꺼번에 매몰하자, 살처분 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철저한 방역도 좋지만, 침출수 유출 및 지하수 오염 등 2차 환경오염이 우려돼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자는 것. 농림수산식품부도 지난달 24일 방역체계 개선책을 발표하면서 "매몰 이외 소각이나 렌더링 등으로 다양화하고, 살처분 세부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렌더링은 사체를 고온 고압의 스팀으로 처리하는 것인데, 기존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에는 나와 있으나 사용되지 않았다.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사체의 20%만 잔존물로 남겨 퇴비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장점에도 불구, 렌더링 기기가 대당 3억원으로 워낙 비싸고 처리 속도도 느리기 때문이다.
소각은 잔존물이 거의 없는 게 장점이지만, 대기오염 가능성이 문제다. 또 화장장처럼 혐오시설로 인식돼 경기도의 축산관련 공공기관 중 한 곳만 소각장을 운용하고 있을 정도다.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 관계자는 "한 번에 최대 1.5톤까지 처리 가능한데, 기름만 1,000ℓ가량 들어가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이외에도 매립을 한 뒤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도 사체를 부패시키는 '혐기성 소화'나 고압 상태에서 염기성 용액으로 사체를 분해하는 방법도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정부 대책 내놨지만 질병 근원 '밀식사육' 못 고쳐
이번 구제역은 당국의 미흡한 초동대처 등 인재(人災)적 요소와, 이상저온 현상으로 바이러스 확산의 최적 환경이 장기화했던 천재(天災)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재난이었다.
가장 뼈아픈 패착은 지난해 11월 의심신고가 처음 접수됐을 때, 당국의 초기 판단 착오로 5일간 차단방역이 지연됐다는 점. 그동안 바이러스가 분뇨 등을 통해 경기 북부 지역으로 전파됐고,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백신 접종을 둘러싼 실책도 사태를 키운 요인으로 분석된다. 백신을 놓으면 청정국 지위를 잃게되는 점 때문에 당국이 머뭇거리는 바람에 구제역이 발생한지 거의 한 달이 지난 12월25일에서야 접종이 시작됐다. 그러나 연간 수십억원에 불과한 육류 수출을 위해, 수조원 예산을 살처분에 투입하는 우를 범하고 만 것. 발생 초기에 전력 방역하지 않고 확산 정도에 따라 기계적으로 대응 수준을 높이는 등 잘못된 방역매뉴얼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120여일간 3조원이 넘는 비싼 과외비를 치르고서야 깨닫게 된 이런 문제점은 지난달 말 정부가 발표한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 정부는 앞으로 구제역이 발생하면 초기부터 전국 농가에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 곧바로 최고 경보단계(심각)에 준하는 강력한 방역단계로 들어가기로 했다. 감염 통로가 되어 온 분뇨ㆍ사료 운반차량의 등록제를 시행하고, 대규모 농가에 한해 2012년부터 축산업 허가제도 실시키로 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는 각종 가축질병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밀식(密植) 사육을 막을 구체적 방법은 없어, '반쪽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역별 사육 두수를 통제하는 총량제가 밀식을 막을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제기됐으나, "사유재산권 침해"라 주장하는 축산농가 등의 반발 때문에 대책에서 빠지고 말았다. 결국 방역을 강화하는 대증요법에는 신경을 썼지만, 근치(根治)를 위한 획기적 대책은 내놓지 못한 셈. 감염가축 처리를 여전히 환경문제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매몰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시가의 100%를 보전해 주던 매몰보상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도 대책에 포함됐지만, 축산 농민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해 실제 제도화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는 "농민들의 책임 분담을 위해 방역의무를 준수했느냐에 따라 보상금을 달리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 그러나 축산단체는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지시에 따라 감염되지도 않은 가축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100% 보상을 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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