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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숙 두 번째 소설집 '노웨어맨'/ 가짜 세계에서조차 팽 당하는 젊은 세대의 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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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숙 두 번째 소설집 '노웨어맨'/ 가짜 세계에서조차 팽 당하는 젊은 세대의 곤경

입력
2011.04.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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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살의 소설가 염승숙씨의 두 번째 소설집 <노웨어맨> (문학과지성사)은 20대의 존재감이란 묵직한 문제의식을 다루면서도 이야기의 발상은 20대다운 발랄한 재기로 번뜩인다.

여덟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청년 실업 세대의 존재 상실. 소설집 제목으로도 쓰인'노웨어맨'은 비틀스가 부른 곡으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란 뜻. 이 실존적 고뇌가 어린 말을 작가는 직접적으로는 금융자본주의에서 배제된 파산자에게 적용하는데, 소설집 전반에 걸쳐 존재감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를 아우른다.

자칫 분노 과잉이나 우울 과다로 흐르기 쉬운 주제지만 작가는 이 세대가 처한 두 겹의 곤경을 냉철하게 직시한다. 세계로부터 소외돼 있다는 상실감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진입하려고 애쓰는 그 세계 자체가 이미 가짜가 아니냐는 통찰이다. 소설은 가짜의 세계에서조차 팽 당하는 젊은 세대의 어이없는 심경을 포착해 나간다.

표제작 '노웨어맨'에서 짝퉁 천지인 동대문시장에서 일하는 장공수의 한탄은 그 숨막힌 비명이다. "모두가 가짜인데, 진짜를 흉내내기에 급급할 뿐인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인데, 그런데 노웨어맨이라니, 아무 것도, 아니라니." (69쪽) '무대적인 것'의 이진성 역시 짝퉁의 일종인'미투(me too) 상품' 개발자. 업계 1위 상품을 모방한 제품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상품을 만드는 바람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인물이다.

'레인스틱'은 젊은 세대가 처한 이 딜레마를 환상적 기법으로 잘 드러낸, 돋보이는 단편이다. 소설은'최종 면접 때 자신이 앉을 의자를 직접 가져오라'는 회사의 황당한 주문에 맞춰 취업 준비생이 의자를 들고 면접장을 가는 과정을 그린다. 진지하게 구직에 나서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런 상황이다. 세계가 가짜라면 그 곳으로 진입하려는 구직의 도전 자체가 일종의 부조리다. 대결해야 할 진짜의 세계 자체가 소멸해 버렸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수밖에. 특히 소설 속에서 젊은이들은 빗소리를 내는 악기인 '레인스틱'처럼 몸이 15도 가량 기울어지면서 빗소리를 내는 전염병에 걸려간다. 비는 안 오고 빗소리만 내는, 비의 대용품인 레인스틱은 가짜화하는 이들의 불안감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상징적 장치다.

소설의 설계도는 이처럼 튼실하지만 인물의 살을 붙이고 대화를 꾸미고 이야기를 엮어가는 건축 과정은 다소 성긴 측면이 없지 않다. 인물들의 성격이 머리 속에서만 궁굴려 나온 듯 앙상하고 도식적이어서 아쉽다. 하지만 작가의 또 다른 특장인 우리말 어휘력이 탁월해 향후 작품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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