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장미를 땅에 심었다
순간 장미를 가운데 두고
사방이 생겼다 그 사방으로 길이 오고
숨긴 물을 몸 밖으로 내놓은 흙 위로
물보다 진한 그들의 그림자가 덮쳤다
그림자는 그러나
길이 오는 사방을 지우지는 않았다
● 사람들이 만든 날 중에 식목일이 좋다. 식목일은 나무를 심고 공간의 미래를 그려보는 날이다. 결국 나무를 심는 것은 변화해갈 공간을 심는 행위일 것이다. 내가 살면서 만난 나무는 도대체 몇 그루나 될 것인가. 내 기억 속에 각인된 나무는 또 몇 그루나 되는가.
현상적 사실을 그대로 옮겨 보려는, ‘날(生)이미지’론에 입각한 시인의 시는 여타의 관념을 떨친 채 단백한 노래를 들려준다. 시인은 관념으로 덧칠된 세계를 사실적 세계로 대면하기 위해, 객관적 묘사로 사물이나 현상을 그려놓는다.
장미를 심자 장미를 가운데 두고 사방이 생겼다는 시구를 읽으며 무릎을 쳤다. 이 당연한 사실이 왜 감동으로 다가오는가. 내 가슴에 화두로 다가와 나무처럼 뿌리내린 이 한 구절은 오래도록 자랄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땅에서 뽑으면 사방이 사라진다 해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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