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효자동 소식지 '서촌 라이프' 만드는 삼총사/ "멋스러운 서울 西村, 상업화 막아야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효자동 소식지 '서촌 라이프' 만드는 삼총사/ "멋스러운 서울 西村, 상업화 막아야죠"

입력
2011.04.04 04:32
0 0

"조선시대 골목을 그대로 간직한 서촌(西村)은 멋과 맛이 깃든 동네예요. 하지만 여기도 재개발 바람을 피하진 못했죠. 더딘 변화, 전통을 존중한 변화라면 좋을 텐데…."

경복궁의 서쪽 마을,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서촌. 효자동, 통인동 등을 아우른 이곳은 중인들이 모여 살던 조선시대 이래 예술과 전통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옥인아파트 철거 등 변화가 시작되자, 서촌의 고유한 멋을 지키고자 젊은이들이 나섰다.

설재우(31) 최용훈(30) 김한울(32)씨. 이들은 지난달 사비를 털어 비영리 지역소식지 '서촌 라이프'를 창간했다. 일대의 무분별한 개발을 경계하는 한편, 지역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커뮤니티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표지에는 통인시장 명물인 기름 떡볶이 주인 아주머니 얼굴을 넣고, 속지에는 오래된 맛집을 카페로 바꾸는 데 대한 단상, 주민들의 인터뷰 등을 싣는 식이다. 모델은 탄자니아 아루샤 마을의 지역지 '아루샤 타임즈'였다.

6일 오후 옥인동의 한 카페에서 이들을 만났다. 청각장애인이 바리스타로 근무하는 이 카페는 세 사람의 아지트다. 한창 일할 나이, 직장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이들은 다음달 소식지를 위한 편집회의 중이었다. 카피라이터였던 발행인 설씨와 모바일 IT 업체에서 근무한 프로듀서 김씨는 소식지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편집장 최씨는 야간 근무로 전환하고 낮에는 이 모임에 나온다.

생업을 제쳐두면서까지 이들이 서촌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세 사람은 "이웃의 정이 살아있는 동네"라고 입을 모았다. 서촌에서 나고 자란 설씨야 그렇다 치고, 서울 강남에서 살다가 이사온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최씨도 "동네 할머니들이 '젊은이 어디 가'라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모습에 놀랐다. 이곳이 진짜 내 동네 같다"고 할 정도다. 설씨는 서촌의 변화상을 꼼꼼히 기록한 '효자동닷컴'이라는 블로그를 운영, 하루 최고 2,000여명이 찾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하다.

소식지 반응은 엄청났다. 창간호 1,000부가 완전히 동이 나 2호는 2,000부를 찍었다. "정기 구독할 수 없느냐"며 재촉하는 독자도 상당수다. 전통과 개발의 기로에 선 서촌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많다는 방증이다. 추억이 서린 공간은 사라지고 대형 커피전문점 등이 속속 생겨나는 현상은 인근의 상업화한 삼청동, 인사동의 수순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재개발을 놓고는 주민들의 갈등 조짐도 보인다. 가령, "체부동은 재개발 대상지역에서 지난해 한옥보존마을로 바뀌면서 보상금을 기대하던 주민과 전통을 지키려는 주민들로 나뉜다"(설씨)는 것. 김씨는 "소식지는 개발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기보다 서로 대화해서 풀어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서촌을 알리는 소식지 역할을 높이 산 때문인지 재능기부도 잇따랐다. 서촌에 살았던 서울대 국어교육과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다음달부터 칼럼을 연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일러스트레이터 이아리씨는 2호부터 제호와 삽화를 맡기로 했다. 한 디자이너는 3호부터 편집디자인을 약속했다. 모두 무상이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 지금이야 세 사람이 인쇄비를 충당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씨는 "지난달 무상으로 광고를 넣어봤는데, 상인들끼리 반목만 생기더라"며 "5월 여는 '서촌 역사 갤러리'와 재능기부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팔아 비용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효자동 하면 청와대와 경복궁만 떠올리지만 한 번 와보면 오래된 상점들과 한옥촌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풍경에 금세 빠져들 거예요. 외부에 이런 걸 알리면서도 대형자본에 물들지 않는 이상적인 동네 만들기. 함께 하실래요?" (설재우씨)

이들은 인문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의 '장소의 혼을 훼손하는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빈곤해진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