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경쟁에 극단적 선택"'평점 3.0 이상' 극심한 스트레스로… "친구와 대화할 여유도 없어""도덕적 해이 불가피한 규제""자살 동기로 단정 말아야… 공부 안하는데 국고 지원은 잘못"
"석 달 새 3명의 학생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징벌적 등록금제, 까다로운 학점 등의 정책이 경쟁을 부추기고 학생들을 억누르고 있습니다."(카이스트 3학년 K씨)
"여러 학생 자살이 어떻게 하나의 제도에서 비롯되겠습니까. 자살이 카이스트만의 문제도 아니고요."(카이스트 관계자)
올 들어 벌써 재학생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카이스트(KAIST)에서 연일 자살의 원인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과 일부 교수들은 "서남표 총장의 비교육적 개혁 정책이 문제를 키웠다"고 비판하고 나섰고, 학교 당국은 "나름의 필요성이 있는 개혁 들인데, 이것이 자살의 원인이라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학생들의 잇단 자살은 분명 학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대전 유성구 구성동 카이스트 본원 캠퍼스를 찾아 구성원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돈으로 압박 vs. 도덕적 해이 방지
1일 카이스트 학생회관에서 만난 곽영출 학부 총학생회장은 "학업부담이 너무 심하다"며 "징벌적 등록금제도 등으로 인해 하고 싶은 공부 대신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만 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토로했다. 카이스트가 2007년부터 도입한 차등등록금제도를 두고 한 말이다. 성적과 무관하게 국고지원을 받던 종전과 달리 평점 3.0이상인 학생만 수업료를 면제하고 그 이하는 평점이 떨어질수록 본인 부담금이 커진다.
카이스트는 1일 오전 비상특별위원회에서 이 제도들을 포함해 문제점과 대책들을 논의했다. 하지만 학내에선 "논란으로 삼으니까 문제가 된 것이지, 기본적으로 도입 초기 환영 받던 정책이고 필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박희경 기획처장은 "차등등록금은 매 학기 수백만원의 국고를 받아 공부하는데도 성실하지 못하고 수년째 졸업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 불가피하게 도입한 제도였다"며 "자살방지 비상대책 등을 강구해 진행하고 있지만 당장 등록금제도를 바꾸는 것이 꼭 정답이라 할 순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는 "올해 들어 자살을 택한 세 학생의 자살동기가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마치 하나의 이유, 제도 때문인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1월에 숨진 조모(19)씨는 성적고민도 컸지만, 여자친구와도 결별한 상황이었던 점, 지난달 20일 세상을 등진 김모(19)씨는 성적이 좋았고, 차등등록금 징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 또 지난달 29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한 장모(25)씨 역시 2004년 입학생이기 때문에 아예 차등등록금제 적용 대상이 아니었고 수년간 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혁' 앞에 힘 잃은 인간관계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곽영출 총학생회장은 "자살을 결심하게 한 방아쇠가 개인적인 일이었을지 몰라도 현재 학교 환경이 자살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단시간에 추진한 징벌적 등록금제도가 100% 영어 수업 등의 다른 제도와 맞물려, 삭막한 경쟁분위기가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 등 학생활동이 눈에 띄게 위축되면서 공동체 문화도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했다.
1학년 K(20)씨는 "도덕적 해이를 막는다는 차등등록금제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영어로 모든 수업을 듣고 답지도 영어로 써내야 하고 이걸 해내지 못하면 돈을 내라는 식이라 심적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즐거운 학교생활이나, 창의력을 키우는 모험 같은 것을 꿈꾸기 보단 일단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고 했다.
3학년 L(22)씨는 "솔직히 동아리 활동이고 뭐고 모두 거추장스럽고 힘에 겨워 차라리 혼자 활동하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자살 위험률을 높이는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한다. 대전생명의전화 최영진 소장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 상황에서 주위 인간관계가 무너진 환경이라면 문제를 타고 넘을 힘도 상실하게 된다"며 "성격 집안 성적 등 무엇으로 고민을 하든 자살 결심에 이르는 수많은 순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나 대상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위기학생 상담 및 지원체계도 미흡한 실정이다. 카이스트 교내 클리닉과 상담센터에서 학생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유일한 상담센터 건물에는 국번도 사라진 옛날 전화번호가 버젓이 매달려있었다. 곽영출 총학생회장은 "2003년에도 3명의 재학생이 연달아 목숨을 끊자 이를 계기로 자살방지책에 관한 논의가 일었으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대전=글·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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