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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블랙 스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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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블랙 스완의 시대

입력
2011.04.0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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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와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화제가 된 영화 ‘블랙 스완’을 보았다. 발레를 주제로 한 영화는 ‘화이트 스완’과 ‘블랙 스완’으로 대조되는 백조 캐릭터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완벽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이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백조는 말 그대로 흰색으로 대표되는 새이다. 그러나 1697년 한 생태학자가 호주에서 검은색 백조를 발견하면서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 ‘블랙 스완’은 ‘실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던 사건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일컫게 되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이단아이자 새로운 현자로 불리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2007년 저서 ‘블랙 스완’에서 “위기는 갑자기 나타나며, 장차 상상을 초월하는 파국이 월가를 강타할 것”으로 내다봤다. 때마침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이 책은 2009년 타임지가 선정한 ‘지난 6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12권의 책’에 포함되었고, 금융모델의 불완전성과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다.

블랙 스완은 희귀성, 큰 파급효과, 사후설명 가능성의 세 가지 요소를 가진다고 한다. 저자는 대표적 사례로 인터넷, PC, 1차 세계대전, 9ㆍ11테러, 구글 등 역사적 사건과 과학기술의 와해성 혁신을 들었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희귀한 사건이지만,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의 복합재난도 그렇게 볼 수 있다.

블랙 스완 사건은 정상적 예측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갑작스레 발생한 듯 하다. 하지만 사후에 되돌아보면 그럴 듯한 설명이 가능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에게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불확실성이나 변동성에 눈을 감는 심리적 저항이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건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원화하고 복잡해지는 세계에서 블랙 스완은 자연 재난 뿐 아니라 금융 위기나 사회정치적 격변 등 다양한 형태로 더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블랙 스완을 내다보고 예측력을 높이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기반을 쌓아가야 한다. 또한 그 충격에 더욱 견고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과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영화 ‘블랙 스완’은 차이코프스키의 고전 '백조의 호수'를 각색했다. 나탈리 포트만은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감이 극한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순수한 백조가 블랙 스완으로 변모하는 역을 잘 소화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가 고등학생 때 인텔 과학경진대회 준결승까지 진출한 과학영재로 하버드대에서 심리학 학위를 받은 수재라는 것은 고무적이다. 게다가 영화계 은퇴 후 뇌인지 과학을 공부하고 싶다니 기대할 일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나탈리 포트만의 블랙 스완 무대 후 쓰러진 백조의 마지막 말은 ‘나는 완벽했어’이다. 이런 완벽을 추구하는 정신은 기초과학에도 필요하다. 기초과학은 호기심을 바탕으로 자연의 극한을 탐구하며 새롭고 완벽한 것을 창조해야 한다. 그 과정은 항상 엣지에서 모험으로 가득한 삶으로, 정신적으로나 확률적으로도 블랙 스완과 친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스완’이란 필명과 거무스레한 피부의 기묘한 결합으로 ‘블랙 스완’이라는 놀림을 받았던 필자에게 블랙 스완의 시대는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존 F. 케네디의 말처럼,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을 꿈꾸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아태 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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