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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늙은 여자의 뒷모습'전 여는 장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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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늙은 여자의 뒷모습'전 여는 장숙씨

입력
2011.04.03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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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가 죽음을 피해 갈 순 없죠. 늙는다는 것은 바로 불가항력적 죽음으로 한 발짝 더 내딛는 것이고요. 근데 이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죽는다는 게 그리 서글픈 일만은 아니더군요. 오히려 몸이 둥글게 변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으로 다시 돌아가는 아기가 되더란 말이죠.”

신체 일부를 20여년간 찍어 온 여성 사진작가 장숙(42)씨가 10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늙은 여자의 뒷모습’전을 연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툭 트인 공간에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노인의 등을 비춘 사진 여러 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몸은 싱싱함과 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카메라에 담긴 노인의 등은 가려움을 못 견뎌 긁어 생채기가 났고, 딱지가 내려 앉았다. 보기 흉한 점과 얼룩도 도드라졌다. 듬성듬성한 흰 머리는 힘없게 늘어졌다. 뒷모습이 자아내는 애처로움과 늙음이 주는 서글픔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찰나 작가는 그리 슬퍼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8년의 전시 공백 동안 그는 꾸준히 늙은 여성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장씨는 “신체의 변화, 신체의 움직임에 유달리 관심이 많아 늘 인물 사진을 찍었어요”라며 “인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긴 시간을 관찰하고 싶지만 여건상 죽음에 좀더 렌즈를 들이댄 것입니다”고 전시 배경을 밝혔다.

노인 등 사진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단위로 찍은 90대 여성의 뒷모습이다. 이 노인은 마지막 사진을 찍고 1년 뒤 사망했다. 장씨는 세 작품 앞에 서서 “첫 사진은 살집도 제법 있고, 부드러운 목선 등 여성의 몸도 완연하지만 2000년 찍은 사진에서는 좀더 마르고 등허리가 굽어진 게 슬며시 드러나요”라며 “돌아가시기 1년 전 사진에서는 머리가 백발로 변해 버렸고, 그마저도 귀찮다며 짧게 잘랐어요. 앙상하게 마른 근육이 살갗 안에서 적나라하게 움직이고,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면서 등허리가 굽었죠. 몸집도 훨씬 줄었고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순차적으로 사진을 보면 마치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려는 준비를 마친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고 묻는다. 꼿꼿한 일자였던 다리가 관절이 불편해지면서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O자형으로 바뀐 사진, 엉덩이가 축 쳐지면서 타원형을 그리는 사진은 작가가 말한 느낌을 말없이 또렷하게 드러낸다.

피사체가 됐던 그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장씨는 “일단 친해져야 하죠. 수개월 동안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면 그들도 내 진심을 알아줘요”며 “옷을 벗고 사진을 찍자고 하면 ‘나쁜 일에만 쓰지마’라고 한 마디 툭 하시곤 슬며시 옷을 벗으셔요”라고 했다. 이번 작품에는 제주 해녀, 도시에서 생활한 노인, 한 평생 농사를 지은 노인 등 12명이 참여했다. 총 30여점 중 작가가 선별한 20여점이 전시된다.

작가는 관객에게 당부한다. “평소 등이나 엉덩이의 뒷모습을 이토록 자세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없는데 보정하나 거치지 않은 사진을 통해 노화, 즉 죽음과 마주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살펴 보는 자리가 됐으면 해요.”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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