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가 일으킨 방사능 공포가 좀체 가시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인의 침착함과 질서정연함에 놀랐는데, 지금은 우리 원전의 안전 여부에 신경이 집중되고 있다. 이웃이자 원전 강국인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라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의 불행한 사태에서 원전 사고보다 더 눈길이 가는 문제가 있다. 지진과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대부분이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곳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인구의 25% 가까이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다. 이번에 피해가 심했던 동북부 지역은 이 비율이 30%에 육박한다. 그래서 피해자도 고령자가 많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숨지거나 실종된 2만여 명 중 대부분이 65세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인들이라 쓰나미가 올 때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했고, 요양소나 병원에 있다 참변을 당한 경우도 많았다.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도 그렇지만, 고령화는 사회에 더욱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 동북부 지역은 재난 이전에도 고령화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현재 피해 복구작업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데에도, 앞으로 지역 사회를 재건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도 고령화가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살아남은 노인들에게서 젊은이와 같은 재건 의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현지 발 기사들에서 고령화가 미치는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그간 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경고가 잇따랐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관심은 주로 고령자가 늘어나는 반면 출생률이 줄어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경제적 측면에 집중됐다. 개인들의 관심도 어떻게 노후자금을 조달할 것인가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고령화의 여파는 경제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몇 해 전 일본에 있을 때 젊은 시절 인기 여가수였던 이가 치매를 앓던 부모를 간병하다 지쳐 자살한 일이 있었다. 60대 노인이 90대 치매 노부모를 봉양하다 힘에 겨운 나머지 노부모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일도 여러 건이었다. 이번 재난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 문화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런 문화는 노인들에게는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다. 신세를 지지 않으려다 보니 늙어서 자식에게도 친척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버티다 막바지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홀로 고독사하는 노인들도 많다.
어느 날 슈퍼마켓 앞에서 한 노인이 식료품을 자전거에 싣고 가다 옆으로 넘어지는 장면을 보았다. 깜짝 놀랐지만 노인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자전거에 다시 올랐다. 자전거 무게조차 감당하기 힘겨운 노쇠한 모습에, 바람이라도 불면 쓰러질 것 같은 노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경제대국이 되면서 평균 연령이 늘어나 세계 제일의 장수국가가 됐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쇠퇴해가고 있는 일본의 현재를 상징하는 듯했다.
2050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38.2%에 달해 세계 최고령국가가 될 것이라는, 이번 주에 나온 한국금융연구원의 분석이 두렵게 느껴진다. 일본의 이번 사태는 고령화가 사회 전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관찰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사례가 될 것 같다.
남경욱 문화부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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