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이후]신뢰 내세워"신공항 계속 추진" 대선공약 시사측근들은 "MB와 각세우기 해석 말라" 선긋기
표현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의 수위는 낮지 않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1일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비판함에 따라 정국에 만만찮은 파장이 일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또 "동남권 신공항은 필요하고,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해 신공항 건설을 차기 대선 공약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어찌 보면 예견된 내용이었다. 두 가지 점에서다. 박 전 대표는 정치적 신뢰를 누구보다 강조해 왔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왔다. 또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이후 여러 차례 그 필요성을 얘기해왔다. 때문에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두 가지 측면에서의 비판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론이었다.
하지만 발언이 나오기까지는 고심이 적지 않았다. 박 전 대표로선 자신의 최대 정치기반이자 지역구의 이해가 달린 문제이다. 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서 국민적 시선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또 평소 강조해온 정치적 신뢰라는 점에서만 보자면 대선 공약 파기를 강하게 비판해 마땅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악화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말하자면 박 전 대표에게 신공항 문제는 여러 딜레마가 중첩된 사안이었다. 그래서 측근들도 며칠간 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결국 날이 선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할 말은 모두 담는 방식을 택했다. 수위를 조절하려는 노력이 발언 곳곳에서 묻어났다. 세종시 수정 논란 때 등장했던 '강도론'이나 18대 총선 공천 당시 친박계의 대거 낙천 이후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격한 표현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또 동남권 신공항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하다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언 시간의 상당 부분을 물류량 확대 추이나 공항 건설 기간 등 경제적 논리 설명에 할애했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의 발언 직후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것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부연설명을 하기도 했다.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정책적인 문제로서, 다른 복선이나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발언자의 의도와는 달리 발언에 담긴 내용이 이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어서 파장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여권에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양측 관계는 2009년 세종시 수정 논란으로 최악으로 치달았다가 작년 8월21일 청와대 회동 이후 데탕트 쪽으로 완연히 돌아섰다. 지금까지는 서로 감정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하지만 "이날 발언을 계기로 양측의 우호적 관계가 변곡점에 이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한 여권 인사는"시기의 문제일 뿐 양측의 갈등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청와대도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양측의 이해를 따져봤을 때 아직은 등을 돌릴 때가 아니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여권 관계자는 "양측이 확전을 자제하고 있어 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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