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 소재의 영화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건 1970년대 초 중학생 때 봤던 이다. 원제 대로 1940년 가을 독일의 런던대공습을 막아낸 영국공군의 활약상을 담아낸 영화다. 하늘을 가득 메운 독일전투기 메서슈미트, 폭격기 융커스와 영국의 스핏파이어, 허리케인 전투기들의 모습은 엄청난 장관이었다. 로렌스 올리비에 등 당대의 명배우들에 최고의 특수촬영기법이 동원됐지만 애석하게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했다. 다큐멘터리처럼 만드는 바람에 드라마적 요소가 너무 없었던 때문인 듯싶다.
■ 이에 비하면 오히려 몇 년 앞서 1964년에 제작된 우리의 는 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경우다. 당시 250만 인구의 서울에서만 25만 명의 최다관객을 동원했고, 그 해 아시아영화제에서 감독상(신상옥)과 남우주연상(신영균) 등을 휩쓸었다. 한국전을 배경으로 F-86 세이버 제트전투기(사실 6ㆍ25 때 한국공군은 F-51 무스탕 프로펠러전투기를 몰았다) 조종사들의 활약과 애틋한 사랑을 낭만적으로 담아냈다. 영화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우리나라에선 일찌감치 없어진 이 반공정서 담긴 영화 필름을 김정일이 구해 소장하고 있을까.
■ 그 전설이 47년 만에 부활한다. 기종을 F-86에서 최첨단 F-15K로, 캐스팅도 신영균ㆍ최은희에서 신세대 스타 비(정지훈)와 신세경으로 바뀐 (가제)가 연말 전 개봉을 목표로 며칠 전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을 무대로 크랭크인됐다. 예전 비행기 날개에 아슬아슬하게 카메라를 달아 찍었던 공중전 장면은 하루 임대료만 1억 원에 달한다는 보잉사의 항공촬영 전용기에서 실사로 촬영하는 등 제작비만 최소 150억 원대로 잡고 있는 블록버스터다. 젊은 파일럿들의 목숨 건 작전과 사랑이 주제라는 점에서 그대로 의 재현이다.
■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마후라'가 일본식 발음이거니와, 90년대 말 동명(同名)의 10대 포르노물로 인해 빨간 마후라의 컨셉트를 그대로 차용하기에는 난감한 측면도 있다. 지난해 해병대를 다룬 가 별 재미를 못 봤듯 군 영화는 홍보성이 짙으리라는 관객들의 예단도 쉽지 않은 벽이다. 한계를 넘어 또 한 번 한국영화의 획기적 성과물이 나오길 기대한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유성처럼 흐른다 나도 흐른다.' (한운사 사ㆍ황문평 곡) 예전 이 영화 주제곡에서 이 대목에 이르면 왜 그렇게 아련하게 가슴이 뛰었던지.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