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보다 더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야구라는 단어다.”
프로야구 9구단의 구단주인 김택진(44) 엔씨소프트 대표는 31일 경남 창원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창단 기자회견에서 야구에 대한 ‘추억’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야구 점퍼를 연상케 하는 소탈한 회사 점퍼 차림으로 나온 김 대표는 “어릴 적 봤던 이란 만화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투수로 만드는 과정을 그린 만화였는데 만화 주인공을 따라 나도 중학교 때까지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차고, 책을 보고 커브를 연구했던 기억이 난다”며 추억의 시간을 되돌렸다.
김 대표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건 야구였다. 사회적 책임과 지역 사회 공헌을 위해 이제는 약자에게 내가 받은 용기와 희망을 되돌려주고 싶다”고 창단의 ‘변’을 밝혔다. 엔씨소프트는 KBO 사무국, 8개 구단과 협의해 선수를 수급하고서 이르면 2013년 시즌부터 창원과 경남을 연고지로 삼아 1군 리그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종도의 개막전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되살아난 열정
동국중학교 재학 시절 당시 인근의 장충단 공원에서 글러브를 끼고 살았던 김 대표는 3학년 때 학교가 이전을 하는 바람에 ‘놀이터’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1982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탄생한 프로야구는 김 대표에게도 ‘충격’으로 다가 왔다. “이종도씨의 끝내기 만루홈런을 보면서 직접 하지 못했던 야구 열정을 프로야구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서울에 살고 있어서 MBC 청룡 팬이 되고자 굉장히 노력하고 좋아했다”고 말했다.
▲마음 속의 영웅 최동원
야구를 향한 김 대표의 열정은 1984년 롯데-삼성의 한국시리즈 때 절정에 이르렀다. “개인적인 우상은 최동원씨입니다. 혼자서 4승. 아직도 제 기억은 생생합니다.”‘무쇠팔’을 자랑했던 최동원은 혼자서 한국시리즈 4승을 올리면서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선사했다. 김 대표는 “최동원씨는 이 세상의 영웅이 되는 모습을 제 마음 속에 심어 줬다”고 말했다.
▲IMF 위기를 희망으로 극복하게 해 준 박찬호
고등학교 시절까지 야구에 빠져 살던 김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입학과 동시에 야구공과 글러브를 놓고 컴퓨터에 빠졌다. “아래아 한글을 개발하면서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는데 창업을 하고 나니 IMF(국제금융위기)가 터졌다. 그 때 용기를 준 건 박찬호였다. 그의 투구를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갖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나를 지탱해준 건 야구였다”고 고백했다.
▲인생을 바꿔 놓은‘국민 감독’김인식
김 대표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정말 심장을 뛰게 한 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에 이어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었습니다.”김 대표는 “안타깝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독이 든 성배’라고 했던 대표팀 사령탑을 다시 맡은 김인식 감독님을 보고 거스 히딩크 감독 이상의 한국인 신화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9구단 창단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게 된 계기였다.
김 대표는 “제 체구가 좀더 컸다면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고, WBC를 보고 난 후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런 감동을 주는 야구인을 배출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허구연 위원과의 운명적인 조우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사내 직원들을 위한 명사 초청 강연에 허구연씨를 초빙해 2주에 한번 야구 강연을 듣게 했다. 김 대표는 “강연이 끝난 뒤 허 위원님과 티 타임을 갖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30년 동안 우리 야구계를 이끌어 오신 허 위원님의 제안에 용기를 가졌다. 처음으로 (야구단 창단에 대해) 회사 식구들에게 물어봤다. 많은 지지와 호응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창단 의향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신을 ‘베이스볼키드’에서 구단주로 키운 ‘5인’에 대해 “막상 창단을 결정하자 우려도 많았지만 많은 격려와 용기, 사명감을 주셨다. 오늘은 그 열정과 박동이 시작되는 날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좋은 결실을 맺고 한국 야구가 사랑 받는 데 일조하는 구단이 되고 싶다”고 창단 ‘일성’을 마무리했다.
창원=성환희기자 hhsung@hk.co.kr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