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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日 원전사고의 진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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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日 원전사고의 진짜 교훈

입력
2011.03.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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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치러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 선거의 돌풍은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1980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주총리를 배출하고 사회민주당 연립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이 곳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가 이끄는 기독민주당이 집권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보수당의 텃밭이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일컬은 '독일 정치지형의 대지진'의 진원지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전을 다시 생각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은 즉각 원전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고, 4개 야당 소속의원 14명이 신규 원전건설을 백지화하라는 결의안을 발의하는 등 정치 이슈화하는 조짐이 보인다.

사실상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추상적으로만 여겼던 원전 반대, 방사능 공포를 현실의 존재로 바꾸고 있다. 언제 재앙으로 치달을지 모를 원전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은 망연자실한 경험이다. 꼭 '상상치 못한' 자연재난 때문도 아니었다. 이미 70~80년대에 규모 9.0 지진에 대비하자는 건의가 "1,0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며 묵살됐고, 23만여명을 휩쓸어간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후에는 도쿄전력이 "50년 내 설계기준을 넘는 대형 쓰나미가 올 가능성이 10%"라는 자체 연구결과를 내고도 그냥 넘겼다. 원전 강국이자 원칙주의자로만 알았던 일본이 이럴진대 우리나라는 과연 안전하랴는 생각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정부가 흔들림 없는 원전정책을 고수해온 이유는 원자력이 가장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전력원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은 전력생산단가가 ㎾h당 39.39원(2008년 기준)으로 액화천연가스(LNG)(143.6원)나 중유(195원)보다 훨씬 낮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옆 나라에서 방사성 물질이 날아오는 상황에선 계산이 달라진다. 수명 끝난 원자로의 폐로 비용도 문제지만, 만에 하나 일어날 사고처리비용은 단가계산에 애초부터 고려되지 않았다. 원자력이 생각만큼 값싸지 않다는 반박이다.

그러나 일본이 주는 교훈은 원전안전성에 대한 경각심만이 아니다. 정책결정은 주판알 놀음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더 큰 교훈을 봐야 한다. 일본 수도권에 송전하던 후쿠시마 원전이 서자 도쿄(東京)도는 시간을 정해놓고 전기를 끊는 계획정전을 실시하고 있다. 밤새 열던 가게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고, 서울 청담동에 비견되는 쇼핑거리 긴자는 암흑에 묻혔다.

우리가 전력생산의 31.2%(2010년 6월 기준)를 차지하는 원자력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단순하게 계산해 각자 전등, 냉난방, TV 컴퓨터 휴대폰 등 전자제품 사용을 3분의 1씩 줄여야 한다면 어떨까. 이렇진 않겠지만 최소한 전기료는 지금보다 몇 배 비싸질 것이다. 지금도 전력이 빠듯한 한여름과 한겨울 피크에는 에어컨과 난로를 꺼야 할지 모른다. 어려움은 돈 없는 서민에게 더 클 것이다.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노후한 고리 1호기를 정지시키자는 제안은 나부터 비용과 불편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1,000년에 한번 겪을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하루를 희생해야 함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원전은 선명성 싸움이 아니라 지루하도록 지속적인 대화와 양보와 합의의 의제다. 이 모든 부담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기꺼이 불편을 받아들이겠다는 합의가 가능한 우리를, 안전 이상의 가치를 얻는 우리를 보고 싶다.

김희원 국제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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