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개발, 궤도 수정하라" 속도조절 나선 중국
2020년'세계 최대 원전 대국'을 목표로 질주하던 중국이 최근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로 제동이 걸렸다. 신규 원전 건설 승인을 잠정 중단하고, 10년간 원자력 발전 용량을 대폭 늘리려던 계획을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전설비 안전점검에도 비상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신장하는 중국 원전은 막 원전수출을 시작한 우리나라로서는 노다지 시장이라는 점과, 후쿠시마 같은 사고가 날 경우 한반도가 직접적인 방사능 오염권에 속하리라는 점에서 그 향방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중국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에 나서면서 석탄ㆍ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05년부터 원전개발에 주력했다. 현재 동남연해를 중심으로 전국에 모두 13기를 가동중인 중국의 원전 발전용량은 지난해 1,080만메가와트(㎿)로 전체 발전용량의 1%를 차지했다. 그러나 현재 25기를 건설중이고 중장기적으로는 70~160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당국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원전 확대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지만 속도 조절에는 나설 방침이다. 웨이자오펑(魏昭峰) 중국 전력기업연합회 부이사장은 최근 주간지 차이징(財經)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최근 원전의 안전성 문제에 비상이 걸리면서 당초 2020년까지 원자력발전용량을 90기가와트(GW) 규모로 끌어올리려던 목표치를 최소한 10GW 이상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원전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점검도 시작됐다. 최근 환경보호부 산하 국가핵안전국 주도로 현재 가동중인 원전은 물론 건설 중이거나 건설예정인 원전에 대해 대대적인 안전성 재점검에 돌입했다. 국가핵안전국의 위쥔(兪軍) 부사장은 "원전 안전 검사에는 원전 건설부지로 제안된 지역에 대한 지질학적 조사까지 포함돼 있다" 며 "검사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관영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들은 이번 점검을 계기로 중국 원전 부지가 대부분 해안지역이어서 지진뿐 아니라 쓰나미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 원전들이 인구밀집 지대에 가깝게 위치해 있고, 일부는 지진가능성이 높은 단층선 일대에 있으며, 원전을 관리할 핵 전문 인력도 많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신 중국은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전지 설비증설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31일 "2020년까지 태양광으로 20GW의 발전용량을 확보하겠다는 목표치를 상향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기후변화 분야의 최고위 관리인 세전화(解振華)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중국 원전건설 계획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국 원전개발 계획이 속도조절에 나섰음을 시사했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 '치명적 매력' 원전 미래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여파는 일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세계로 퍼져나간 방사성물질은 인체에 큰 영향이 없는 수준이지만 세계 원전업계와 에너지정책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원전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지던 원자력산업의 성장기세가 찬물을 맞은 채 주춤거리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3월 기준)인 원전은 총 443기에 달한다. 여기에 건설(66기)을 진행하고 있거나, 계획이 확정된 원전(158기)의 규모는 폭발적이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오랜 침체기를 겪던 원전산업은 최근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신규 원전을 건설하고 있고 미국이 수십년 동안 중단했던 신규 원전을 다시 짓기로 하면서 호황기를 열기 시작했다. 원전이 다시 각광받는 이유는 지구온난화가 주요 환경 이슈가 된 상황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이라는 점이 새삼 부각됐고 효율성도 뛰어나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최적 에너지원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9년 지구촌은 30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는데, 원전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배출 총량은 500억톤까지 치솟는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핵 재앙'의 위험성을 다시 각인시켰다. 덩달아 원전 확대 정책도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논란이 가장 치열한 지역은 유럽이다. 당장 독일은 원전이 정치권에 폭풍을 몰고왔다. 집권 기민당은 27일 58년간 텃밭으로 삼았던 바덴뷔템베르크 주의회 선거에서 패배했다. 원전반대를 앞세운 녹색당의 돌풍에 밀린 탓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앞서 17기의 원자로를 잠정 폐쇄하겠다는 대책을 부랴부랴 발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10년 전 사민ㆍ녹색당 연정이 "2029년까지 가동 중인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고 합의한 것을 메르켈 총리가 뒤집고 원전을 연장키로 한 탓이다.
그러나 처한 조건에 따라 원전정책에 대한 국가별 셈법은 제각각이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원전 안전) 토론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프랑스가 원전을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거짓"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전체 전력생산의 75.2%를 원전에 의존한다. 원전 가동과 개발은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다. 러시아도 최근 벨라루스와 94억달러 규모의 원전 개발 계약을 체결해 원전 수출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계 최대의 원전 대국이었던 미국은 30여년 만에 신규 원전 2기 건설계획이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다. 미 정부는 79년 3월 스리마일섬(TMI) 원전 사고 이후 기존 원전만을 가동해왔으나 104기 원전 중 절반이 넘는 62기가 가동 연한을 넘길 만큼 노후화가 심각해 30여년만에 원전을 짓기로 했었다. 하필 이 때 후쿠시마 사태가 터져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지만 신규건설은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30일 해외 석유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대체에너지, 특히 원전 의존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개발이 진행되고 부존자원이 없는 아시아 국가에서 원전 건설은 에너지 확보를 위한 필수 과제다. 스키쿠마르 뱌네르지 인도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은 "인도는 에너지가 부족한 국가다. 원전 추가 건설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2014년 원전 착공에 들어가는 베트남도 전력난 해소를 내세워 원전 사업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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