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MB의 후환 없애기

입력
2011.03.29 12:02
0 0

한상률과 에리카 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귀국할 때부터 이상하다 했다. 그들이 누군가. 한 사람은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알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고, 다른 사람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발목을 잡았던 BBK사건을 폭로한 주역 중 한 명이다. 그런 이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제 발로 들어왔으니 배경을 두고 갖가지 억측이 난무할 수밖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가담항설(街談巷說) 수준의 막연한 추측이 아니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에리카 김이 받고 있는 혐의는 세 가지다. 수백억 원을 횡령하고 주가 조작에 가담했으며, 이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다. 수사결과 혐의가 모두 인정됐다. 하지만 처분은 각각 기소유예, 공소권 없음, 공소시효 만료였다. 무혐의가 아닌 한 검찰이 내릴 수 있는 최대의 선처다. 동생이 중형을 살고 있어서라는 이유도 그렇고, 시효중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든지 면죄부를 주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 흔적이 역력하다. 대신 에리카 김은 "이 후보가 BBK 실소유주라는 발언은 거짓이었다"고 '판도라의 상자'에 확실한 봉인을 찍어줬다. 이로써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민사회에서 변호사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의혹 받는 에리카 김, 한상률 수사

이 정도면 삼척동자라도 무릎을 치게 돼 있다. '미국 변호사 생활을 하게 해줄 테니 앞으로 어떤 상황이 와도 떠들지 말라.'대충 이런 그림이라는 걸 말이다.

종착역으로 치닫고 있는 한상률 수사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MB와 연결된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논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의 깊숙한 배경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다. 현 정권 실세들이 그로부터 거액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도 여전하다.

법망을 피해 해외로 도피해 숨어 다니던 사람이 "아,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그냥 가방을 싸 들고 들어왔을 리는 없다. 사전에 이 정권과 협의나 묵계가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 그런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검찰은 한씨가 귀국한 뒤 2주일이 지나도록 수사의 기본인 계좌 추적은 물론 한씨 관련 의혹을 제기한 안원구 국세청 전 국장과의 대질조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일자 뒤늦게 계좌 추적에 나서고 대질조사를 했다. 2년 전 한씨의 불법 혐의가 드러났을 때도 검찰은 그가 출국할 때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강제소환 요구가 들끓어도 범죄인 인도청구를 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며 미적댔다.

진작부터 검찰 주변에선 한씨를 그림로비 등의 개인비리로 사법처리하고 현 정부 임기 내 풀어줄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물론 제기된 권력형 비리 의혹들은 입증하기 어렵다며 얼버무리는 선에서 수사를 끝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 정권으로서는 MB 퇴임 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의 비참한 말로를 목도한 입장에서는 주변 정리를 철저히 할 필요를 느꼈을 터이다. 미심쩍은 사건들을 들춰보니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한상률과 BBK였고, 후환을 없애려는 차원에서 진행한 게 이번 수사 아니었을까. 다음 정권이 누가 되든 다시는 싹을 틔우지 못하도록 아예 뿌리째 뽑아버리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시기적으로도 절묘하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내년은 자칫하면 이들의 귀국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기획수사'를 하기로는 지금이 가장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법하다.

집권 4년차 몸가짐 더 신경쓰길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의도한대로만 되는가. 아무리 덮어두려 해도 의혹이 남아있는 한 언제 어디서 불거져 다시 비수가 돼 날아올지 알 수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역대 정권을 보면 기강이 급속도로 해이해질 때가 임기 4년 차를 맞은 이맘때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남은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 한다면 후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