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경고했다. 금융회사들이 돈벌이 욕심에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이나 과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 무리하게 영업하는 징후가 보이면 즉각 칼을 빼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관용 정책(Zero Tolerance Policy)'의 선언이다. 말을 뒤집으면 지금까지 감독당국이 금융회사의 잘못에 너무 느슨한 잣대를 적용해왔다는 '고해성사'이지만,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뜻을 더 높이 사고 싶다.
권 원장 취임사는 금감원의 핵심 역할인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을 원칙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금융회사의 과당경쟁으로 가계대출이나 부동산 대출이 위험수위에 이르러도 이런저런 이유로 방치하는 바람에 소비자 및 고객의 피해와 국민부담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 무분별한 외형 경쟁, 자산쏠림 현상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위기의 싹이 자라지 않게 하겠다"는 말에서도 의지가 잘 드러난다.
특히 "금감원이 한국 금융의 종결자가 되자"고 말한 것이 눈에 띈다. 종결자는 '특정 분야에서 경쟁자를 완전하게 제압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만큼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ㆍ감독을 강화해 감독기관의 위엄을 세우고 업계와 소비자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조직이 되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감독과 검사는 동정의 양면과 같은데 검사기능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금융부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예로 든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전혀 별개 문제다. 외환위기의 아픈 경험을 하고도 카드대란, 저축은행 부실, 코스닥 퇴출사태 등 시스템을 흔드는 위기는 수없이 반복돼왔다. '낙하산 감사인사' 등 감독당국의 조직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를 막는 내부 감시시스템, 시장과의 소통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권 원장은 취임사에서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ㆍ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라는 논어 구절을 인용했는데, 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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