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 우울했어. 자꾸 떠나고 싶었어. 떠나고 싶은 곳도 모른 채 떠나고 싶었어. 내가 덮어쓰고 있는 이 가식적인 가죽을 벗어버리고 떠나고 싶었어. 풀잎이 스치는 것에도 짜증이 났어. 꽃잎이 스치는 것에도 우울했어. 우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어. 하늘이 작아지는 것 같았어. 숨이 막힐 것 같았어. 아무 것도 하기 싫었어.
왜? 거울 속의 나에게 물었어. 왜? 거울 속의 내가 거울 밖의 나에게 물었어. 몰라. 나도 몰라. 내가 돌아서자 나도 돌아섰어. 새벽 3시에 잠이 깨어도 다시 잠들 수 없었어. 오래 전에 끝이 난 병이 다시 찾아왔어, 숨이 자주 막혔어.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어.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들. 낡은 병.
오래된 슬픔의 두께. 몇 소절만 기억나는 노래.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노래. 찾아갈 수 없는 그 집. 어디쯤인 것 같은 추억. 너 어디 있어? 너 어디 있어?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 이 도시에도 내가 없고 저 도시에도 내가 없어. 나는 도시와 도시 사이에 서 있는 뿐인데. 이 도시에서는 저 도시로 돌아가고 싶었어.
저 도시에서는 이 도시로 이주하고 싶었어. 지역 번호가 다른 두 개의 전화. 늘 부재중인 나. 그러다 너를 보았어. 가지마다 꽃송이를 달고 만개를 꿈꾸는 너를 만났어. 고마워. 알아. 3월이 끝났어. 4월이 시작됐어.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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