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후 들어오기 시작한 차이나머니가 이제 우리 자본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큰손’으로 부상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차이나머니의 비중은 이제 외국계 자금 중 네 번째로 크고, 주식시장에서도 최근 3년간 2조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이며 투자규모를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차이나머니의 국내 투자가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에 따른 위안화 절상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커지는 파워
29일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말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 중국계 자금의 비중은 고작 0.2%였지만 불과 3년 만에 9.3%까지 급상승했다. 미국(21.5) 태국(21.1%) 룩셈부르크(16.5%)에 이어 네 번째로 크다. 시장을 좌우하는 ‘큰손’이 된 것. 실제로 지난해 가을에는 중국의 국내 채권시장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자, 한국은행의 금리인상기조에도 불구하고 국고채 금리가 급락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시장에선 “금리방향을 결정하는 통화당국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아니라 채권시장의 외국인들”이란 ‘농담 아닌 농담’까지 나돌곤 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룩셈부르크의 평균 만기는 2년 정도이고 태국 자금의 평균만기는 1.1년에 불과하지만, 차이나머니의 평균만기는 4년으로 일본(4.6년) 다음으로 길다”고 지적했다.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양질의 자금이라는 설명이다. 그만큼 앞으로 채권시장 내 영향력도 계속 커질 전망이다.
차이나머니는 주식시장에서도 지분을 넓혀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차이나머니는 우리 주식시장에서 2008년 3,700억원, 2009년 8,600억원, 2010년에는 1조원을 순매수하며 규모를 키워왔다. 특히 올 들어 유럽쪽 자금과 조세회피지역 펀드들은 한국 주식을 내다 팔고 있는데도 중국은 매달 3,000억원 이상씩 계속 사들이고 있다.
왜, 얼마나 더 들어올까
중국은 세계에서 돈이 가장 넘치는 나라. 외국인투자로, 경상수지흑자로 세계자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지금 국내적으로 넘쳐나는 자본을 나라밖으로 퍼내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야 ▦과잉유동성에 따른 국내 인플레를 누그러뜨릴 수 있고 ▦위안화 절상 압력도 피할 수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 파워’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 기술을 흡수하고 글로벌 파워를 키우는데 있어 한국 시장이 제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한국은 아시아 중에 경제규모가 크고 자금시장이 개방돼 있으며 산업도 발달돼 있다”면서 “중국과의 무역량도 많아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향후 중국의 대표 투자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차이나머니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소연 연구원은 “위안화 절상 압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가 해외로 돈을 풀고 있고 투자처도 다변화하고 있다”며 “지난해 중국 기관들의 해외 포트폴리오투자(QDII)를 통한 한국증시 투자비중은 4.6%(약30억달러)였는데 중장기적으로 이 금액이 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현재의 두 배 이상 차이나머니가 더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이달 초 세계5대 국부펀드 중 하나인 중국투자공사(CIC)가 한국 주식 전용 기금을 만들어 3억달러 이상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기대와 우려
차이나머니가 한국 자본시장의 큰 돈 줄로 급부상하면서 ‘리스크’ 또한 커지고 있는 게 사실. 일단 채권시장에서 중국 자금이 일시에 갑자기 들어오면 금리를 통한 한국 정부의 통화정책이 먹통이 될 수 있다. 또 한꺼번에 자금을 빼갈 경우엔 채권시장의 ‘공동화(空洞化)’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 증시 한 관계자는 “중국 자금이 장기투자 성격이지만, 향후 투자 비중이 지금보다 크게 늘어난 상태에서 양국에 민감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엔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자금이 한국 기업의 주식을 대거 매입해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기술력을 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중국 국부펀드는 투자처와 금액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외국계 투자기관 펀드 등을 통해 지분 매입을 하는 것이 특징.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초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투자기관들이 지난해 도시바, 기린 등 일본 우량기업 90곳의 지분을 약 197억달러어치나 사들여 일본 기업들을 긴장시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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