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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론 본 한국, 한국인] <5> 차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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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론 본 한국, 한국인] <5> 차도남

입력
2011.03.2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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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때문일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차도남’의 인기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청소년들이 ‘차도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기까지 할 정도이다. 차도남이란 말 그대로 ‘차가운 도시 남자’의 줄임 말로, 원래는 만화가 조석의 작품 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난 나를 따끔하게 채찍질할 수 있는 차가운 도시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최근에는 차도남의 자격조건이 더 까다로워졌고,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의 줄임 말인 ‘까도남’이란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아무튼 차도남의 특징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샤프하고 차가우면서도 이지적인 외모. 둘째, ‘시크(chic)’한 옷과 장식품. 여기서 시크란 절제된 분위기의 스타일로, 이성적이고 도시적이며 고급스러움을 나타낼 수 있는 낮은 채도, 낮은 명도를 기준으로 무채색인 검정 하얀 회색과 퇴색된 듯한 파스텔 톤 등의 색이 결합된 이미지를 일컫는다. 셋째, 일과 자기관리에 철저하며 거의 흥분하지 않는 냉철한 파이터. 넷째, 전반적으로 사람들한테 차갑고 도도하며 까칠하게 군다. 다섯째, 딴 여자한테는 아주 까칠하게 굴지만 자기 여자는 은근히 챙겨준다.

차도남은 옛날 같으면 사람들이 재수 없다면서 배척하기 쉬운 기피형 인물에 속했을 것이다. 열정이나 생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무채색에 가까운 마음과 외모, 오만이나 독선으로 비치기 쉬운 도도함, 타인에 대한 배려나 예의와 거리가 먼 차갑고 까칠한 태도와 비사교성 등 욕먹기 좋은 특징들을 잔뜩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최근에는 이런 차도남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인기를 끌기까지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차도남이 패자가 아닌 승자, 약자가 아닌 강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차도남은 흠 잡힐 게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회적으로 중상류층 이상에 해당되는 남자로서 경쟁이나 승부에 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다. 그야말로 그는 처절한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세상에서 화려한 무늬와 색채를 뽐내는 기린이나 얼룩말 과가 아니라 무채색에 가까운 냉혈적 사냥꾼인 사자나 하이에나 과인 셈이다. 그러니 요즘처럼 승자를 숭배하며 패자를 경멸하는 세상에서는, 따뜻하고 정은 많지만 경쟁에서 패하기 쉬운 ‘따도남’보다는 까칠하고 차갑지만 경쟁에 강한 차도남이 더 인기를 끄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도남은 또한 무자비한 세상이 자신을 할퀴어도 상처를 입지 않거나, 상처를 입을 수 없는 남자를 상징한다. 즉 그는 ‘쿨’하고 강해 상처를 입지 않는 남자라 멋지거나, 과거에 큰 상처를 입어 까칠해진 남자라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차도남은 다른 여자한테는 까칠하지만 자기 여자한테는 충실하므로 바람을 피우거나 스캔들에 휘말릴 염려가 없다.

작금의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차도남이 아주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홀로 고립되어 있는 외로운 싸움꾼이요, 상처 입은 야수일 수도 있다. 그러니 차도남은 연애나 결혼의 대상으로는, 글쎄 한번 더 생각해봄이 어떠할지….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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