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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의 휴먼드라마] <30ㆍ끝>‘종장에 부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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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의 휴먼드라마] <30ㆍ끝>‘종장에 부쳐서’

입력
2011.03.2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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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30회에 걸쳐서 나의 삶의 행적을 되짚어 보았다.

물론 모르고 빠뜨린 것이며 알고도 빼먹은 대목도 있다. 그러나 기억에 떠오르는 대로, 생각에 잡히는 대로, ‘요것만은!’ 이라고 여겨진 것은 그런대로 대충 골라진 것 같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에 걸친 삶의 궤적을 되돌아본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엎치락뒤치락! 갈팡질팡! 헤매고 더듬고 했다. 더러는 전혀 모르는 낯선 길을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인생길에서 내가 나그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유치원 다니던 여섯 살짜리 유년시절부터 회고는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서도 화제가 잡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고교 거쳐서 대학까지에서도 이야기 거리는 찾아내어졌다. 성인이 되고 사회인이 된 뒤로도 그랬다. 자그마치 반세기 넘고도 20 년의 세월, 그 까마득하고도 아스라한 세월이 다루어졌다.

그 사이, 시대의 변화는 대단한 것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겹친 군국주의 시대를 어릴 적에 겪어야 했다. 그 사이, 중일전쟁이 일어 났다. 중학교 들어서부터는 제 2 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학교는 군대의 병영 같았다. 육군 중위의 교관과 하사관 두 사람의 지휘와 감독을 받으면서 꼭 현역의 소년병처럼 하루 하루를 보내어야 했다. 친구 가운데는 소년 항공병으로 지원하고 나서기도 했다.

1학년에서 5학년까지, 상급생과 하급생 사이에는 엄청난 계급의 차이가 있었다. 그건 군대 계급만큼 무시무시했다. 우리 1 학년들은 학교 안 어디에서나 노상 거수경례를 하고 다녀야 했다. 우글대는 상급생에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학년 때, 8ㆍ15 광복을 맞았다. 절반가량 되던 일본인 학우들이 떠난, 그 빈 자리를 일본서 돌아 온 소위, ‘귀환동포’ 학우들이 얼마쯤은 채웠다.

하지만 조국광복, ‘조선 독립’의 보람과 기쁨도 잠시, 이내 좌우익의 갈등, 이를테면 자유진영과 공산 진영 사이의 갈등에 온 나라가 휘말려 들었다. 그 지겨운 파장은 당시 4 년제이던 중학교 안에도 밀치고 들었다. 학생연맹이라는 우익과 학생동맹이라는 좌익이 아귀다툼을 벌였다.

학생동맹에서는 곧잘 스트라이크라고 하던 동맹휴학을 감행하곤 했다. 나는 그들의 주의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학교 빼 먹고 놀게 되는 게 좋아서 스트라이크 하는데 찬성하곤 했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나는 그 어느 쪽에도 껴들지 않았다. 그 따위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귀동냥으로 듣는 마르크스나 레닌 따위 보다는 내가 읽는 헤르만 헤세며 앙드레 지드가 월등 좋았다. 우리 아버지가 좌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의 중립은 결코 섣부른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좌우익의 정치적 파란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6ㆍ25 전쟁이 터졌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였다. 부산서 피난 대학이 개학하기 전, 서너 달 가량을 부산 부두에서 미군 수송부대의 통역을 맡아 했다.

수송선에서 내린 병기들이며 군수물자를 기차에 실어서 일선의 전쟁터로 보내는 것을 거들면서 나는 6ㆍ25를 겪었다. 그것은 나의 간접적인 참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쟁을 끝내고 휴전협정이 성립되었다. 군데군데 폐허로 변한 서울로 돌아가서는 복학했다. 그 뒤로 대학생활은 순조로웠다. 대학원까지 마치고는 중학교 교사를 거쳐서 대학의 교수가 되도록 탄탄대로를 걸어 나간 셈이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정치적으로 우리 사회는 심하게 환란을 겪었다. 의거(義擧)가 일어나고 쿠데타가 돌발하고 군사 독재가 나부대기도 했다.

그 시대적인 파란만장은 내게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것은 아랑곳도 하지 않는 맨송맨송한 맹꽁이였다.

오직, 대학과 서재, 그게 나의 세계였다. 읽고 쓰고 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골몰했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그 짓 하는 것 말고 딴 재주는 내게는 아예 없었다. 나머지 모든 일에는 그저 솜방망이였다.

이 한 권의 글, ‘휴먼드라마’는 그 마무리의 하나다. 감히 자서전이라고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내 어쭙잖은 삶의 토막 가운데서 그나마 쉽게는 잊히지 않을 것들일 뿐이다. 어릴 적, 길가다가 동전 줍듯이 내 삶의 길목에서 이것저것, 주워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끄럽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 격이어서 이냥 세상에 내어 놓는다.

‘김열규의 휴먼드라마’는 30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4월 6일부터는 소설가 이호철씨의 글이 매주 수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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