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사정권 시절 공안당국의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려 희생되거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들의 재심 사건에서 대법원이 잇따라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980년대의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인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85년 사형된 김정인(당시 41세)씨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 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은 12ㆍ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취임식 몇 주 전인 1980년 8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김씨와 친척들을 간첩 혐의로 체포한 뒤 불법 구금과 고문 등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 기소한 사건이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해 7월 이 사건 재심에서 "30년 전의 사건 기록을 다시 살펴본 결과 김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과거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은 장기간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조작된 것으로, 법원이 진실 발견을 소홀히 해 무고한 생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는 회한을 떨칠 수 없다"며 사법부의 과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하기도 했다.
또 1980년대 초반 조총련의 지령을 받고 국내로 잠입한 간첩으로 몰려 9년가량 복역한 최양준(72)씨도 28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최씨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최씨가 간첩 활동을 했다고 볼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이 옳다"고 판단했다.
일본을 오가면서 장사를 하던 최씨는 1982년 김해공항에서 간첩 혐의로 돌연 체포됐다. 부산 보안대와 서울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 등에서 20여일 간 불법 구금돼 조사를 받은 그는 징역 15년의 확정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8년6개월 만인 1991년 5월 가석방됐다.
재판부는 "최씨가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보안대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 구금을 당한 점, 과거사위원회의 조사에서 보안대 수사관들이 최씨를 각목으로 때렸다고 시인한 점 등을 종합할 때 최씨가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 조사나 법원 공판 단계에서 자백한 것도 검사의 윽박지름, 자백하면 선처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라는 보안대의 회유에 따른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1970년대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으로 인해 7년 간 옥살이를 한 박춘환(65)씨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도 39년 만에 무죄를 확정했다. 고문에 못 이겨 박씨의 간첩활동을 인정하는 허위 자백을 한 뒤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징역 8월을 선고받은 박씨의 마을친구 2명도 함께 무죄가 확정됐다.
박씨는 1968년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납북, 억류 5개월 만에 귀환했다. 1972년 북한 고무ㆍ찬양 및 국가기밀 탐지ㆍ수집 등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만기출소했다. 박씨 등은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경찰의 불법 구금,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한 범죄사실에 기초해 재판이 이뤄졌다'는 결정을 내리자 재심을 청구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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