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연일 지속되는 예멘에서 테러조직 알카에다 변수가 터져 나왔다. 알카에다가 예멘군 병력이 시위대 진압에 분산된 사이 동부 마리아, 남부 아비안주의 일부 도시 점령에 나선 것이다. 예멘에서의 알카에다 준동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미국은 그 동안 대테러 전쟁에서 살레 대통령의 협력을 받아왔다. 때문에 살레 대통령이 조기 퇴진 약속을 아예 철회한 것에는 알카에다 변수가 작용하고 있고 미국이 이를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2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아리안주 자르의 한 탄약제조 공장에서 이날 폭발 사고가 발생, 최소 75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했다. 화재 진압이 늦어져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공장은 전날 알카에다가 약탈했던 곳으로, 남은 탄환 등을 가져가려고 지역 주민들이 몰려들었을 때 폭발이 일어났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AFP통신은 "(알카에다가 설치 해 놓은) 부비 트랩이 폭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예멘 전역에서 살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2달째 이어지면서 일부 지역이 알카에다 손에 넘어갔다. 특히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예멘 남부 아리안주를 거점으로 삼았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본부(AQAP)가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카에다의 세력 확장은 역설적으로 살레 대통령을 퇴진 위기에서 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살레 대통령은 27일 알아라비야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예멘의 상황이 시한폭탄과 같다. 혼란이 지속되면 (과거 남북예멘 분단 때보다 더 심하게) 나라가 4개로 쪼개져 소말리아처럼 내전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물러날 경우 알카에다 등의 준동으로 혼란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는 이어 내년 1월까지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이날 집권 국민의회당(GPC)도 야권과의 권력이양 협상과 관련한 정무위원회 회의 직후 성명을 내고 "살레 대통령이 2013년까지 잔여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해 살레 대통령에 힘을 실었다.
살레 대통령이 알 카에다 발호를 어떻게 이용하려 할지 현재로선 분명치 않다. 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미국은 예멘 알 카에다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살레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던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살레 대통령이 퇴진을 철회하자 당장 미국이 거들고 나섰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유약한 지도자가 예멘의 정권을 잡을 경우 미국의 대테러 전략에 '실질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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