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일 개막하는 국내 프로야구가 올해로 서른 살이 됐다. 1982년 3월27일 삼성라이온즈 대 MBC 청룡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닻을 올린 프로야구가 어엿한 어른이 된 것이다. 구기 종목 중에서 가장 먼저 프로제도를 도입한 야구는 맏형답게 지난 해 592만 여명의 관중을 끌어들이며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프로야구가 서른 살이 됐지만 미국 메이저리그(1876년)나 일본 프로야구(1934년)에 비하면 연륜은 한참 못 미친다. 메이저리그는 양대 리그에 30개팀으로 운영되면서 지난해 7,300만명의 관중을 유치했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탄생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3S 정책-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를 도입해 대중의 우민(愚民)화를 꾀하려 한다는 반발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 속에 미숙아로 태어난 프로야구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우량아로 성장했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프로야구는 질적,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다 국내에 복귀한 박철순이 원년에 22연승을 기록하며 신화를 썼지만 이제는 우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주름잡고 있다.
프로야구는 30년 동안 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왔다. 97년 IMF 사태 때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라운드에서 어루만져 주었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나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국위 선양에 앞장 서기도 했다.
프로야구가 한참 일찍 출범한 일본 프로야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전인미답의 퍼펙트 게임은 물론 개인 통산 500홈런도 나와야 한다. 불멸의 대기록들이 작성되려면 팬들이 많이 경기장을 찾아 사랑을 주는 수 밖에 없다.
일단 분위기는 좋다. 올해 20년 만에 제9구단인 엔씨소프트가 창단 승인을 받았고, 조만간 제10구단도 닻을 올릴 기세다. 그러면 미국이나 일본처럼 양대 리그도 가능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보는 야구를 떠나 직접 하는 야구가 붐을 타고 있어 사회인리그에서 활동하는 동호회 선수들이 경기장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프로야구의 젖줄인 고교야구팀이 불과 50여 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웃 일본은 4,000여 개에 달한다. 게다가 싹이 보이는 유망주들은 국내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스타 기근에 허덕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보통 한 세대(世代)를 30년으로 잡는다. 이제 다음 세대를 향해 출발선에 선 프로야구는 과거를 계승발전 시키는 차원에서도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야 한다. 명예의 전당을 통해 어린 꿈나무들이 '불사조' 박철순, '홈런왕' 김봉연 등의 환희와 눈물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영미 시인은 고 했지만 서른 살이 된 한국 프로야구는 이제 또 다른 잔치의 출발선에 서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이용일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30억~40억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나와야 국내 프로야구의 저변이 확대된다"고 말했지만 기자 개인적으로는 연봉 100만 달러를 받는 스타 플레이어를 하루 빨리 보고 싶다. 이미 잔칫상은 잘 차려져 있다. 이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있게 만드는 것은 그라운드를 달리는 선수들의 몫이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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