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007년 제약회사와 시험기관의 복제약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결과 조작사건을 수사하면서 "제약회사들이 조작에 관여했다"는 시험기관 관계자의 진술을 받아놓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이후 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약제비 환수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 제약사들이 문제가 된 약을 팔아서 챙긴 1,200억원 가량의 건강보험 약제비를 대부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2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의약품 시험기관 L사의 생동성 시험 책임자였던 A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따르면, A씨는 검찰에서 "제약회사들은 직원들을 시험기관에 수시로 보내 생동성 시험 진행상황을 파악했다"며 "시험 결과가 (오리지널약과 다른) 비(非)동등으로 나오면 제약회사는 매출과 이익을 향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제약회사들에게 직접 (시험 조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관련 제약사들이 기소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검찰이 증거 부족으로 판단해 그렇게 한 것으로 아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가 속했던 L사는 28개 제약회사와 거래하고, 53건의 생동성 조작 혐의가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2008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자 L사 대표였던 박종세씨와 대학교수 3명, 시험기관 연구원 등 총 23명을 기소했다. 식약청이 검찰에 사건을 넘기면서 203건에 이르는 의약품 허가를 취소했고, 연루된 제약회사는 94개사로 국내 거의 모든 제약사가 포함됐지만 기소된 제약사 관계자는 S제약 직원 1명뿐이었다. 이 직원은 A씨가 진술한 거래와는 상관없는 다른 시험기관과의 거래로 기소됐다.
검찰의 해명은 명확하지 않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최모 검사는 제약회사들의 관련 혐의를 적극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시험기관들이 조작을 주도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험기관들이 (시험통과) 실적을 높여야 제약사들의 의뢰를 많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약회사들이 시험통과 실적이 높은 시험기관들을 찾았다는 것 자체가 조작을 알고 있었다는 뜻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은 보건복지부의 지침에 따라 2008년부터 94개 제약회사에 1,184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의 봐주기 수사에 이어, 법원도 모두 "시험 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제약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건강보험 재정만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생동성 시험조작 사건이란
생물학적 동등성(bio- equivalence) 시험은 특허 만료된 신약(오리지널)을 본떠 만든 복제약(제네릭)이 신약과 동등한 약효를 나타내는지 증명하는 시험이다. 제약사가 인가받은 사설 시험기관 등에 의뢰해 합격을 받으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약품의 품목 허가를 내준다. 2006년 모 대학 약학연구소 연구원이 "광범위한 생동성 시험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국가권익위원회에 제보하면서 사건은 촉발됐다. 식약청은 감사소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시험기관의 원본 시험자료와 식약청에 제출된 시험결과 자료가 다른 203건의 품목에 대해 허가취소 조치를 내렸다. 관련자들은 검찰에 수사의뢰됐다. 제약회사들은 "약효와 상관없는 작은 오차가 다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복제약을 믿을 수 없다"며 원본자료 미확보 등의 이유로 허가취소가 되지 않은 576개 품목에 대해서도 자료공개 소송을 내서 승소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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