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인사프로필에는 '최틀러''돌격대장'이라는 표현이 늘 따라다닌다. 2003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시절 수출만 보며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인 그의 이력 때문에 얻은 별명이지만, 소신있는 경제관료로 크며 매사 분명하게 일을 처리해온 솜씨를 평가하는 의미도 있다.
그런 그도 이명박 정부에선 크게 재미를 못 봤다. 정권 초 '강만수 사단'의 일원으로서 기획재정부 차관이 됐지만 1년도 안 돼 또다시 무리한 환율정책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시장친화적 정책을 표방한 정권 주류들과 맛이 달랐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인 만큼 연초 '해결사''대책반장'등의 별명을 가진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함께 중용된 것은 작지 않은 뉴스였다. 동반성장이 국정화두로 등장하고 정부의 역할이 커진 시기였지만, '관치의 화신'으로 불렸던 두 사람의 동반귀환은 시장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유사 손목 비틀어 기름값 압박
이름은 헛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존재감만으로 시장의 질서와 기강을 잡겠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몸을 낮춘 것마저 화제가 됐던 최 장관도 곧 본색을 드러냈다. 1월 중순 이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것을 받아 "내 전직이 회계사다"며 돌연 정유업계와 서바이벌 게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가동 중인 '민관 합동 기름값 태스크포스(TF)'가 보고서를 제출하면 회계사로 돌아가 직접 원가계산을 해보겠다는 그의 논리는 이렇다. 정유사의 정유부문 영업이익률은 3%선이지만 이자 등 영업외비용이 거의 없는 만큼 일반 제조업에 비해 낮지 않다, 더구나 정유업은 독과점이다, 이런 경우 정부 개입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 일반적 이론이다…. 나름 정부의 시장개입과 정유사 압박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돌격대처럼 덤볐던 그의 첫 시도는 헛발질로 끝날 것 같다. TF가 국제 원유값과 국내 기름값 사이의 비대칭성을 밝히기 위해 두 달 이상 정유사 장부를 뒤지고 거래관행을 조사했지만 뚜렷한 혐의를 찾지 못한 까닭이다. 정부는 대책 발표에 앞서 어떤 꼬투리라도 찾겠다는 태도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회계사 운운하던 최 장관이 "영업이익을 내는 정유사들은 적자를 내는 한국전력이나 제당업계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며 관치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내니 말이다. 한전과 제당업계가 적자를 내도 국리민복을 위해 정부에 협조하는 것처럼, 정유사도 알아서 '성의'를 표시해 정부 입장을 살려달라는 뜻이다.
물론 그도 할 말이 있다. 정유사들이 "왜 치마 속까지 들추냐"며 제대로 된 원가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기름값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일 때 시장에 "최중경과 맞서지 말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위세를 과시한 그로선 정유사들의 저항에 복장이 터지겠지만 으름장외엔 별 수단이 없다.
여기서 문득 드는 의문은 국리민복을 앞세워 사기업의 이익을 내놓으라고 호통치고 닦달하는 최 장관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에 거품을 물며 반대한 그 최장관과 같은 사람이냐는 것이다. 정 위원장의 문제 제기가 거칠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간 이익공유제는 현실에 맞지 않다""애초부터 틀린 개념이다. 더 이상 논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시종 일축한 사람이 유독 기름값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니 말이다.
"이익 공유는 안될 일" 이중잣대
손목 비틀기에 의한 이익 출연은 옳은 시장적 개념이고, 업계에 권유하는 이익공유는 틀린 반시장적 개념이라는 판단엔 내가 했냐 남이 했냐는 차이밖에 없다. 여기엔 고교나 대학 선후배의 예의도 없다. 로맨스와 불륜의 비유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다.
오랫동안 독과점 시장에서 손쉽게 독점이윤을 챙겨온 정유사를 편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청와대 특명사항을 받든다며 현실과 논리를 다 팽개치고 자가당착과 몽니를 일삼는 정부를 지지할 뜻은 더욱 없다. 관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사람에게 관치의 칼을 쥐어주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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