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40km떨어진 후쿠시마(福島)현의 한 마을. 시금치 더미가 널브러진 밭 한 가운데에서 한 농부가 울부짖고 있다. 방사능 오염으로 겨우내 키운 시금치 출하가 금지되면서 낙담한 것이다. 농부는 이 지역에서 40년 이상 시금치 토마토 등을 재배해 온 사이치 사토(59).
그의 집안은 이 곳에서 400년째 농업에 종사해왔다. 현재 재배면적은 5만6,000㎡. 농업이 그의 전부였는데 이번 도호쿠(東北) 대지진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시금치에서 세슘이 기준치보다 5배(1931Bq/㎏)이상 검출되는 직접적 타격을 입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시금치, 입채소 등의 출하를 금지했다. 29일 미 뉴욕타임스는 "원전 사태가 일본 농부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어는 때보다 깊은 원전 주변 일본 농민들의 시름을 전했다. 사토는 벌써 올해 소득의 5분의 1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해도 난 일을 할 수 있는 이 땅이 필요하다. 여기를 떠나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후쿠시마현은 일본 내 쌀 생산량 4위, 농산물 출하액이 11위일 정도로 대표적 농업지역이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으로 일본 정부는 원전 주변 30㎞ 이내 지역에서 완전 대피 또는 실내 대피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라 올해 농사는 불가능하다. 또 토양의 방사능 오염이 악화하고 있어 언제 농사를 재개할 수 있을 지 기약도 없다.
소비자들의 외면은 농부들의 생명줄을 끊는 것과 같다. 후쿠시마시에서 30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는 소이치 아베(62)는 "다른 수입원이 없다. 우유 원유 출하 금지로 매일 7만엔(93만원) 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며 "한번 외면한 소비자를 어떻게 되돌리겠는가. 이곳 농업은 붕괴되는 일만 남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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