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1일 취임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역대 총재들과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우선은 독립성 공방. 이명박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출신이 통화정책 총책임자로 온다는 사실부터 논란거리가 됐던 터에 "(한국은행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표현은 맞지만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는 그의 발언은 기름에 불을 붓는 격이 되고 말했다. 이로 인해 김 총재는 이후 금리결정 때마다 독립성 논란, 나아가 시장과의 소통 논란을 겪어야 했다.
통화정책 결정자(금융통화위원회 의장)가 아닌 중앙은행 최고경영자(CEO)로서의 행보도 늘 관심거리였다. '순혈주의'와 '연공서열'이 강한 한은에서 젊은 피 발탁, 외부 영입, 박사 우대, 직군제 철폐 등 틀을 깨는 개혁을 단행했다. 내부적으로는 '개혁이 아닌 개악'이란 반발도 나왔지만, 김 총재의 파격 실험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이제 취임 1년. 과연 '김중수 체제의 한국은행'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고, 또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학계, 연구소, 금융시장 전문가 10명으로부터 김 총재의 1년에 대한 평가, 그리고 조언을 들어봤다.
종합 평점은?
27일 본보가 지난 1년간 김 총재에 대한 평가를 'A, B, C, D, F'등 평점으로 받아본 결과, 전문가 10명 중 5명이 C평점을 부여했다. A는 한 명도 없었고 B는 4명(B와 B- 각 2명)이었다. 유일하게 실명으로 평점을 매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본 역대 한은 총재 중 최악"이라는 평가와 함께 낙제점(F)을 줬다. 전체를 평균해보면 C 내지 C+ 정도 되는 셈이다.
이런 낮은 점수는 지난 1년간 김 총재가 통화정책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비롯된다. 김 총재 하의 한국은행 위상 및 독립성을 묻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이 "이전보다 하락했다"고 답했다. "독립성과 위상이 큰 폭으로 추락했다"고 답한 이들도 4명이나 됐다.
설문에 응한 한 전문가는 "김 총재 이전과 비교해서 독립성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고, 또 다른 전문가는 "1998년 한국은행법 개정 이후 한은의 독립성과 시장 권위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단 1명만이 "한은의 위상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다"고 평했다.
가장 큰 강점은?
반면 김 총재의 글로벌 마인드는 후한 점수를 바았다. 한은 내에서 첫 손에 꼽히는 영어 실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비롯한 다양한 해외 근무 경력 등이 뒷받침된 결과. 이명활 금융연구원 거시금융연구실장은 "지금까지는 한은의 업무가 우물안 개구리 식의 한계가 있었는데 김 총재 취임 이후 국제기구에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보내고 해외 출장도 아낌없이 지원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 공조에 잘 부응하고 있다"고 평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중앙은행의 글로벌 역량이 점차 중요해지는 흐름 하에서 김 총재의 경험과 마인드는 확실히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팀과의 원활한 호흡을 장점으로 꼽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전체 경제팀과의 조화가 매끄럽다"고 했고, 오석태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도 "정부와의 정책 공조가 긴밀하다"고 평했다.
다만 청와대나 기획재정부와의 호흡은 보기에 따라 '자율성이 약화된 중앙은행'의 단면으로 해석될 소지도 농후하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대표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가장 큰 약점은?
지난 1년간 김 총재가 보여준 행태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시장과의 소통'문제를 지적한 이들이 많았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시장에서 금리를 올릴 것 같다고 예상하며 동결하고 동결을 예상하면 올리는 식의 엇박자를 자주 보여왔다"며 "분명 시장과의 소통에 단층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통화정책의 수단인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시장금리를 움직이고 주도할 수 있는 수단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평했다.
일관성 부족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모호한 화법을 쓰기는 해도 일관성은 유지했다"며 "일관성이 무너지면서 시장의 신뢰도 함께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한은이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고 시장의 변화를 추종하는 데 급급하다"고 평했다.
남은 3년 어떻게 해야 하나?
'김 총재에게 딱 1가지만 주문을 해달라'는 질문에 공격적, 독립적 통화정책을 언급한 이들이 많았다. 이상재 현대증권 투자전략부장은 "경제정책 중 가장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것이 금리정책"이라며 "좀 더 공격적인 금리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석원 팀장은 "한은이 다양한 목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물가안정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시장이 인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도 "한은 총재는 성장과 안정 중에서 올해는 확실히 안정 쪽에 우선을 둔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시장에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석훈 교수는 "금리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시장 인식을 다시 되돌려야 한다"고 했고, 김윤기 대표는 "훼손된 독립성과 일관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우 실장은 시장과의 소통 강화를, 오석태 상무는 1년째 공석인 금융통화위원의 조속한 임명을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작년 9월과 올해 2월 금리 동결 아쉬웠다" 연내 2,3차례 인상 전망
김중수 한은 총재는 취임 후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으로서 12번의 금리 결정을 내렸다. 이중 4번을 올렸고, 8번은 동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 고위 인사는 "3번에 한번 꼴로 금리를 올렸다면 비교적 공격적으로 통화정책을 편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고 말했다.
이 부분은 전문가들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대목.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대표는 "단지 아쉬운 점은 인상이든 동결이든 시장과의 교감이 부족한 탓에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12번의 금리 결정 중 전문가들이 가장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힌 결정은 작년 9월. 전문가 10명 중 5명이 이 때를 꼽았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거시금융연구실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작년 7월 처음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9월에는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강한 시그널을 주고서도 금리를 올리지 않게 되자 시장에선 충격이 컸다"며 "그로 인해 금리 인상 시점이 계속 늦춰졌다"고 지적했다. 만약 그 때 김 총재가 금리를 올렸더라면, 중앙은행 독립성이나 의사소통 시비도 줄었을 것이란 얘기다.
올 2월에 금리를 동결한 것이 아쉬웠다는 지적도 4명이나 됐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물가 상승세가 가파른 상황에서 1월에 이어 2월에도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주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향후 금리 정책에 대해서는 대체로 연내 2, 3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점쳤다. 이상재 현대증권 투자전략부장은 향후 3차례 금리 인상으로 연말에 기준금리가 연 3.75%가 될 것으로 내다봤고, 오석태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연말까지 2번 정도 인상을 예상하며 향후 물가 사정에 따라 추가 인상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은 "내년에는 기준금리가 4%대에 올라서야 한다"고 말했다.
● 평가에 참여해주신 분들 (가나다 순)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대표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오석태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이명활 금융연구원 거시금융연구실장
이상재 현대증권 투자전략부장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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