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나라다. 베트남전의 참담한 패배로 한때 분쟁 개입을 꺼리기도 했으나 그레나다 침공(1983)을 시작으로 파나마 침공(1989), 걸프전(1991), 발칸 전쟁(1995), 아프간 전쟁(2001) 이라크 전쟁(2003) 등 많은 전쟁들이 미국의 주도로 벌어졌다. 이란대사관 인질 구출 작전(1980), 레바논 해병대 침투 작전(1982), 소말리아 내전 개입(1992) 등 국지적 군사작전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 정도다.
무력 사용엔 명분ㆍ원칙이 중요
미국은 전쟁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베트남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던 전쟁도 있었다. 성공한 전쟁에는 엄중한 명분과 원칙, 통일된 지휘계통이 존재했으나 실패한 전쟁은 그렇지 못했다. 2001년 아프간 전쟁은 9ㆍ11 테러라는 전 국민적, 전 세계적인 공분이 있었다. 현재까지 미국의 가장 오래된 전쟁으로 전락했지만, 개전의 명분만큼은 훼손될 수 없는 것이었다. 1991년 걸프전도 이라크의 쿠웨이트 무력 점거라는 침략 행위에 맞선다는 공통의 가치가 있었다. 유엔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코소보 전쟁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지상군 파병 배제 결정에도 불구, 나토의 일사불란한 지휘로 세르비아의 독재자를 몰아내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성공하지 못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무기(WMD)를 빌미로 유엔의 승인도 없이 이라크를 침략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축출했지만, 일방주의 전쟁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말리아 내전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개입했다 늘어나는 미군의 인명피해에 흥분해 졸속으로 '군벌 섬멸'로 확전을 꾀하다 망한 경우다.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전개하고 있는 리비아 전쟁은 어느 쪽일까.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유엔 결의에 따라 공습에 나서고 있지만, 의미 있는 전쟁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기되는 많은 논란처럼 전쟁이 리비아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자를 몰아내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미국은 유엔이 카다피 축출까지 위임한 것이 아니라며 한발 빼려 하지만, 학살자를 온전히 남겨두고 어떻게 민간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인지는 설명이 없다.
사실 리비아는 전쟁을 벌일 만큼 미국에 중요한 나라가 아니다. 리비아 석유를 많이 갖다 쓰는 것도 아니고, 바레인이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미군이 주둔하는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다. 카다피와 맞서 싸우는 반정부군을 지지한다지만 실상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미국이 벌인 숱한 전쟁처럼 리비아가 미국민의 인명피해를 초래했거나,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도 아니다. 자국민을 학살하는 만행에 눈을 감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전쟁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연합군의 리비아 전쟁은 애초부터 논란의 불씨가 있었다.
더욱 혼란스러운 '국익의 잣대'
리비아 전쟁은 미국이 지켜야 할 국익이 무엇인지를 고민케 한다. 리비아 사태 개입 수위를 놓고 미국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기존 잣대로는 더 이상 국익을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세상이 바뀌고 복잡해졌으며, 더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호 아래 수십년간 도전 받지 않는 권력에 탐닉했던 중동의 독재국가들이 일거에 무너지거나 붕괴 직전에 몰린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미국의 혼란은 세상이 더 이상 미국적 가치를 추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황유석 워싱턴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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